사람은 밥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은 때로는 목숨보다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혹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당황하거나 잘 모르겠다는 대답들을 하겠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고 보면 지나온 세월들은 자신의 가치관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세월의 두께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힘들어진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여간 독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나이가 지긋해서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틀렸어'라고 선언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자존심이란 것을 타고나는 인간인 이상, 누군가가 자기 철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한다면, 자기의 인생과 다름없는 그것을 일단 수호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남전 참전군인인 노인에게 월남전에 대한 반성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주제이다. 월남전 참전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에게는 잘 해봤자 본전이고 잘못 하면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자부심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무서운 게임이다. 술을 걸칠 때마다 지나간 영광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지금의 초라한 현실을 위안할 수조차 없어진다면, 그 뒤에 찾아올 공허가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는 겁이 많았다가 자라면서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나이를 먹으면 두려운 것들의 수도 함께 늘어간다. 직장 상사가 두렵고, 자식이 두렵고, 신세대가 두렵고, 미래가 두렵고, 사는 것이 두렵다. 기성 세대들이 이런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두고, 아직 무서울 것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어른들과는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즘 설레임에 대해 생각 해봤는데, 그건 두려움이 있기때문에 설레일수 있는것 같아. 물론 공포로 가득차버리면 안되겠지만, 두렵기 때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 내가 잘 할수 있을까? 멋지게 해낼거야. ' 하는식의 스스로의 대화를 하며, 요새 엄청 설레이고 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