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2>

6년쯤 전이었던가. 총기난사 장면을 빼고 나면 별로 볼 게 없는 <쉬리>가 나왔을 때였다. 그 영화를 두고 대중들이 '이제 우리도 헐리우드 영화 같은 액션물을 만들 수 있다'며 들떠있던 것이 생각난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예산에서 표현에 제약을 받아야만 했던 시대를 벗어났다는 자축의 의미로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권투 세계 챔피언에 온 국민이 촉각을 세웠다는, 몸과 마음이 가난했던 옛날 옛적의 일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졌다.

열등감에서 비롯한 자축은 다행히도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켜서 국내에서도 꽤 많은 헐리우드형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규모에 대한 열망은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지나오면서 어느정도 자신감이 쌓이는 위치에 올라온 것 같다. 이제 물량만 자랑하는 영화가 예전같이 커다란 화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의 적2>는 이런 배경에서 적절하게 구성된 액션영화이다. 풍자, 액션과 두뇌싸움이 어느 하나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배합되어 있어야 하는 범죄물의 도식에 충분히 부합하는 영화이다. 사실 이정도 영화라면 어지간한 헐리우드 영화 보다는 낫다.

액션 장면이 세련미까지는 받쳐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홍콩 영화의 과장된 액션이나, 선혈이 낭자한데도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타노 다케시의 총격씬이나, <터미네이터 2>류의 헐리우드식 미감에 비견할 만한 우리 영화의 액션 스타일이 만들어지기엔 아직 <쉬리>의 촌스러운 추억이 가시지 않은 탓일까.

모든 사람이 당연히 분노할 만한 적과, 그를 잡으려는 정의의 사도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 손쉬운 자세가 아닌가 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한 접근은 아니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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