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세기에 가장 축복받은 나라이면서 20세기의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나라이다. 그 특징이란 다름아닌 자본주의와 대중문화로서, 미국은 군산복합체, 외환시장, 언론, 상업 영화와 락큰롤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부정적 의미이든 긍정적 의미이든 미국이 선도해 온 이런 요소들은 정치, 경제, 문화에 있어서 현대 사회를 규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는 현대 사회 일반에 대한 보편적 연구와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냉전구도를 지탱했던 축으로 미소 양국 정부의 정책보다 메카시즘을 생산하는 미국 언론을 더 중요하게 꼽은 바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국내의 언론사와 정치권이 벌여온 긴장관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론은 현대 사회에서 의회정치를 종종 압도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권력임은 이제는 다 아는 비밀이 되었다.
<시민 케인>은 1941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 점에 주목한 영화이다. 케인은 미국의 언론계를 장악한 거부로서 사실상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정치권에 도전할 기회도 주어지며, 두 번째 부인을 위한 오페라 하우스를 운영할 여유도 주어진다. 이것들은 케인이 단지 부자여서가 아니라 언론을 조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시사한다.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케인도 가난한 동네 성악가인 두 번째 부인과 정치적으로 다를 바 없는 ‘시민’의 한 사람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현대의 민주주의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시민 케인>인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내세우는 평등이 자본주의가 가진 불평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케인은 정치적 도전과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는, 죽는 순간에 이르러 어린 시절의 ‘로즈버드’를 회상하며 그리워한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형태가 변해도 우리들이 인간인 이상, 소박했던 시절의 꿈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소통과 배려가 가장 소중한 가치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것은 한 시대의 사회상을 묘사하는 것이나, 새로운 연출기법을 제안하는 것과 함께,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탐구를 시도하는 것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