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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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이노센스>는 곱씹어볼만한 구석을 많이 남기는 영화다.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수많은 고전 인용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뇌에 접속된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한 결과물이다.

지금의 검색기술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꺼내오는 것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기억과 검색은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보검색의 질과 속도가 매우 향상되어서 우리 뇌의 기억장치에 비해 손색이 없는 수준을 갖췄다고 해 보자. 그럴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노센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고전을 좀 더 잘 인용할 수 있게 돼서 유식한 척을 더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코엑스 근처 가볼만한 일식집은 어디?'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온다면서 광고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물론 이런 질의는 현재의 수준에서는 결과의 질이 그다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는 조금 더 미래를 생각해 보자. 인터넷 검색만으로 '정말로'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해 보자. 이 때 전통적 방법과 인터넷 검색과의 중요한 차이점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산성 혁신을 주도해온 원리는 지식노동을 통해 육체노동을 줄이는 것이었다. 공학은 이런 경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전산학, 특히 정보검색 분야는 지식노동마저 줄이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지난 시절까지는 꽤나 유식한 척을 할 수 있었던 많은 지식들이 이제는 인터넷을 뒤지면 아무나 금방 알 수 있는 평범한 것이 되었다. 공부하는 대신 접속하면 된다. 실제로 대학 리포트 과제를 공부가 아닌 검색으로 해결하는 추세는 현실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특별히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고서 충분히 지적知的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상황에 적합한 격언을 고전에서 찾아주는 검색엔진'이 개발되어 <이노센스>에서와 같이 아무나 성경과 파우스트를 인용할 수 있다고 해 보자. 보수적인 사람들은 화자가 그 격언의 의미에 대해 모르고 말하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없고, 그런 말을 내뱉어봤자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가 모든 담론의 생산자가 될 만큼 공부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를 만들거나 고치는 재주가 없어도 충분히 자동차를 이용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은 대부분 스스로 확인하거나 곱씹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학구적인 태도는 아니겠으나, 지식을 활용하는 현명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들 각자의 지적 능력은 확장될 것이다. 그 확장분은 우리의 두뇌 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터넷 속에 있다. 인터넷은 너의 인터넷과 나의 인터넷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존재이다. 우리들 각자의 지적 활동이 점점 인터넷에 의존해 가고 있는 동안, 우리들 각자는 인터넷이라는 정신의 단말기가 되어갈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개념을 말하면서 그것을 신과 동일시하였으나, 21세기부터는 인터넷이 절대정신의 구현체로 불리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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