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의 정신분석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닌 의사였으나 20세기를 만든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 그의 정신분석은 명석하고 판명한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근대의 사고방식을 뒤엎고, 의식 저편에 있는 무언가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무의식을 구성하는 근원은 일반화된 형태의 성욕이라고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무의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환자의 꿈을 분석하여 무의식을 진단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이런 혁신적인 생각은 심리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철학, 문학, 미술, 음악을 가리지 않고 열병과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양들의 침묵>이라는 제목은 스탈링의 무의식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사건이 끝나고 렉터 박사가 스탈링에게 이제 양들이 비명을 그쳤느냐고 묻는 장면은 렉터 박사가 스탈링에게 일종의 정신분석 치료를 행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양들의 침묵>은 정신분석을 의술이 아닌 무기로 삼은 추리극이다. 비유를 하자면 수술용 메스가 흉기가 되어 난무하는 광경과 비슷하다고 할까. 렉터 박사는 살인범이면서 정신과 의사이다. 매우 냉철하면서 명석한 그는 상대방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부터 무의식을 파악하여, 상대방을 조종해서 심하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 FBI는 미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렉터 박사의 예리한 지적 메스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의술을 무기로 당당히 삼는 위험한 상상에 대한 풍자나 반성이 보이기 보다는 그저 즐기기를 권하는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통속소설에 기반을 둔 상업영화인 만큼, 지엽적인 사건들의 개연성부터 거시적인 현실인식에 이르기까지 무리가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감안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짜 냄새가 심한 영화가 뜻밖에도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영화의 비현실성은 다름아닌 미국 사회의 비현실성에 의존하고 있다. 지적이면서도 글자 그대로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야만성을 함께 지닌 렉터 박사는 미국 사회의 아이콘이다. 실제로 미국의 연쇄살인자들 중에는 인텔리 계급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지식이 인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서만 이용되는, 그리고 그 욕망이 어긋난 무의식으로부터 조종받고 있는 미국 사회야말로 가장 먼저 정신분석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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