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미디어도 메시지이다.
인터넷 공간은 그 기술적 자율성으로 인해 새로운 미디어의 거대한 실험공간이 되었다. 문자로부터 이미지, 음성, 영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의 정보들이 매일 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소통되고 있다. 현재 문자 정보를 교환하는 매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이 인스턴트 메시징과 게시 시스템이다. 인스턴트 메시징은 대화상대와 동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텍스트를 주고받는 것으로, 전통적인 대화와 전화를 일정부분 대체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시 시스템은 서버에 글을 업로드하고, 나중에 다른 사용자들이 그것을 읽도록 하는 것으로, 게시판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며, 블로그, 위키위키같은 실험적이고 막 확산되기 시작한 미디어들도 이에 속한다.
마샬 맥루한의 말대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그리하여 인터넷 미디어도 메시지이다.주1) 이 글에서는 웹 게시 시스템의 대표적인 유형인 게시판, 블로그, 위키위키의 기술적 정의에 대해 알아보고, 이들 각각이 어떤 방식으로 언어소통을 유도하는가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세 게시 시스템이 각각 어떤 목적의 언어소통에 더 적합한지 알아보고, 실제 적용된 성공적 응용사례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어떻게 동작하는가?
먼저 각 게시 시스템이 어떤 속성들을 갖고 있는지 간단히 정의할 것이다. 기술적 사항에 대해 비교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굵직한 특징들만 모아서 언급한다. 직접 운영해 보고 싶거나,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참고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게시판은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형태의 게시 시스템이다. 가장 최근에 작성한 게시물이 맨 위에 오도록 게시물 리스트가 구성되고, 작성자는 자신이 쓴 게시물에 대한 삭제, 수정의 권한을 갖는다. 대부분의 시스템에 게시물에 대한 게시물인 답글 기능과, 한두 줄짜리 답글에 해당하는 쪽글 기능이 있다.
블로그는 지정된 사용자만 작성하도록 제한한 공지사항 게시판과 매우 닮았다. 표현형식은 게시판보다 훨씬 자유로운데, 보통 한 페이지에 여러 게시물의 제목과 내용이 순서대로 모두 실리는 형태를 띤다. 게시물을 작성할 때에는 문서 요약, 본문, 긴 본문 등으로 나누어서 기록할 수 있으므로, 게시물이 표현되는 곳의 목적에 따라 적절한 분량과 성격의 표현을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publish기능이 제공되거나, 최소한 게시물마다 고유한 URL이 부여된다. 그리고 다른 블로그를 동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backtracking 주2)기능이 제공된다.
위키위키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게시물을 작성, 수정, 삭제할 수 있다. 게시물은 위키 페이지라 불리는데, 이들은 시스템 내에서 고유한 제목을 가져야 한다. 제목은 다른 위키 페이지에서 이 페이지로의 참조 주3)를 작성할 때 사용된다. 아직 생성되지 않은 페이지로의 참조도 가능한데, 누구든 나중에 해당 페이지를 작성할 수 있다. 최근 수정 페이지 조회, 수정 사항 비교, 검색 기능은 거의 필수적이다.
어떻게 사용되는가?
게시판은 작성자가 게시물에 대한 삭제와 수정 권한을 소유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게시자에게 그 게시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텍스트의 의미에 대해 해명하여야 하고, 때에 따라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달리 말하면 게시물 작성자는 주장이나 선언과 같은 개인적인 언표를 게시판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게시판은 최근 업로드된 게시물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게시물 리스트를 가진다. 이것은 사용자들에게 시간 순서에 따라 게시물을 관계짓도록 강제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토론할 경우 대개 최근 첫 페이지 이내의 글에 대한 인용이나 반박을 한다. 게시판에서 화제가 도입되고, 다른 사용자의 호응을 얻고, 화제가 발전되고, 새로운 화제가 도입되는 등의 절차는 대화의 경우와 같아서, 악의적인 이용자가 도배를 함으로써 흐름을 깨뜨릴 수가 있다. 그 때문에 게시판은 종종 인증된 이용자가 실명으로 쓰기 권한을 갖도록 제한된다.
애교섞인 장난인 ‘리플 1등먹기 놀이’는 다수의 사용자에게 쓰기 권한이 있어야 하고, 시간 순서에 따라 게시되어야 하는 두 가지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미디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게시판이 이 특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생겨난 장난이다.
어떤 게시물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반론을 실으면 원문과 평등한 비중으로 게시된다. 어느 경우에나 최신 글 목록 상위에 한 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민주적 소통관계로 인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고, 오래된 게시물은 뒷 페이지로 묻히는 특성에 따라 역동적인 의사소통을 일으킨다. 다만 참여자들 간의 신뢰가 약한 경우, 화제가 중심을 잃고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블로그는 ‘1인 미디어’라는 슬로건 아래 번져나가고 있는 매체이다. 1인 미디어란 배급력과 편집권을 이용하여 다수의 독자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중미디어와 달리, 블로그의 주인인 개인들이 각자의 웹진을 소유하고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시판, 위키위키와 가장 큰 차이점은 1인, 혹은 소수의 저자만 쓰기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는 저자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와 독자가 구분되고, 그들 간에는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게시물의 내용에 수정하거나 덧붙일 내용이 있거나, 반대 의견을 가진 독자는 덧글을 달 수 있지만 원래의 게시물과 같은 수준의 발언권을 갖고 게시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떤 게시물이 이미 있어야만 덧글을 달 수 있으므로 독자에게는 새로운 화제를 제안하는 역할이 제한된다.
이 특징은 사용하기에 따라 장점이 될 수 있다. 게시판은 쓰기 권한을 가진 누구나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므로 화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거나 다른 화제에 가리어 게시판의 분위기가 초점을 잃기 쉽다. 그러나 블로그는 필자가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으므로 안정된 운영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공개일기 형식의 사이트나, 일관되고 정돈된 주장을 펼치기 위한 컬럼 사이트로 활용된다. 어느 쪽이든 블로그 사이트의 성패는 필자 개인의 역량에 깊이 의존하게 된다.
게시물의 소유관계에 있어서는 게시판과 마찬가지로 작성자가 개인적인 언표를 할 수 있으며, 언표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게시물은 시간의 순서대로 올라오므로 예전 글은 묻히기 쉽다. 하지만 출판 기능이 있는 블로그 솔루션을 사용할 경우 블로그 게시물 하나 하나가 각각의 html페이지로 표현되므로 검색엔진 로봇이 방문하여 인덱싱해간다. 그러면 검색엔진의 결과를 통해 예전 글이 계속 읽힐 수 있으므로 다소 시간의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글을 쓸 때에도 유용하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게시물을 공동소유하는 혁신적인 게시 패러다임이 위키위키이다. 위키위키의 가장 큰 장점은 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객관적인 지식에 속하는 주제를 주로 다루게 된다. 성격상 위키 페이지에서 토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주관적인 의견은 공동소유라는 게시물 작성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신변에 관련된 내용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문서를 수정하지만, 게시판처럼 중구난방의 장터분위기가 되지는 않는다. 작성규칙을 일관되게 잘 지켜준다면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잘 정돈된 문서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게다가 몇몇 게시자가 게시물들의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블로그나 게시판이 갖기 힘든 세련되고 오류 없는 게시물들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문서에 결점이 있는 경우, 독자가 그것을 지적하면 필자가 받아들여야만 수정이 이루어지는 다른 게시 시스템과 달리, 문서의 결점이 첫 번째 발견자에 의해 즉석에서 고쳐지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주4)
위키 게시물은 작성시점이 중요하지 않다. 문서에 오류가 있거나 시간이 흘러 적절치 못하게 된 경우에는 수정되기 때문이다.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 게시물에 오류가 있을 경우, 원래 게시물을 수정하지 않고 새로 수정본을 게시하는 것에 대조된다.
게시물의 인덱스가 순번이 아니라 표제어이므로, 참조도 표제어 중심으로 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표제어이지만 앞으로 쓰여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 표제어로의 참조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은 “게시물 공동소유”라는 정도 뿐이므로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몇가지 규칙들을 세우는 것이 좋고, 구성원들이 위키 페이지를 작성하거나 수정할 때 그 규칙을 준수하여 주어야 한다. 일례로 no-smok.net(참고자료 3)의 안내 페이지 주5)에서는 그 사이트에서 적용하고 있는 여러 질서들을 소개해 준다. 이 사이트는 백과사전식 자료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저자가 있는 게시물과 저자가 없는 게시물을 구분하고, 이용자들이 서로 질문과 답을 하기도 하는등 사이트의 성격에 맞는 규칙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런 규칙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고, 실험중인 것이므로 아직 소프트웨어에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 온 사용자는 그곳의 문화에 익숙해 지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위키 사이트에 비협조적인 사용자가 많아질 경우 사이트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음을 나타낸다. 한두 사용자가 게시물을 악의적으로 수정하는 경우 변경 내용을 추적하여 복구하고 악의적인 사용자의 권한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많은 경우에는 세 게시 시스템 중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보인다. 악의적 게시자로부터 가장 견고한 시스템은 블로그이다.
얼마나 사용되는가?
아직 국내에는 게시판 이외의 게시 시스템은 그리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2003년부터 블로그가 포털 사이트들의 정책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싸이월드, 네이버, 야후, 엠파스 등 거의 모든 포털에서 블로그를 제공한다. 그 중 싸이월는 ‘싸이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킬 만큼 크게 유행하였다.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종속되지 않은 오픈소스 솔루션을 이용한 블로그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키위키는 정보의 공익성이 매우 강하고, 여러 사용자가 대규모의 정보를 형성하는 데에 적합한 특성 때문에 포털 사이트의 관심사에 들지 못하고 있다. 블로그는 개인 공간의 성격이 강하므로 사이트를 꾸미기 위한 액세서리를 팔아서 포털 사이트가 수익을 올리기 좋은 반면, 위키는 사전에 가까우므로 페이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없어서 액세서리를 팔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유로운 수정권한은 시스템에 비협조적인 이용자가 많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되므로 위키위키가 포털 회사의 주목을 받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키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이 상당한 분량과 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위키 문화 형성과 저변 확대를 위한 연구와 실험이 앞으로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 가능성
이들 세 미디어는 기술적으로 절반 이상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누군가가 글을 쓰면 서버에 저장되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보여주는 형태마저도 스킨이나 템플릿으로 불리는 기능에 의해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상당한 유연성을 갖고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보이는 형태로 이들을 구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이 공통점에 주목하여 이들을 통합하는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들 미디어의 구분하는 기준은 기술에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법에 있다. 주간신문과 일간신문이 인쇄와 배포기술에서 동일하더라도 미디어의 성격은 확연히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시 시스템을 이용하는 세 가지 용법은 차츰 자신의 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통합 게시 시스템이 나온다면 그것은 스위스 군용 칼과 같을 것이다. 전통적인 도구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한, 우리는 그 중에 원하는 도구를 꺼내서 늘 사용해오던 방식대로 사용할 것이고, 한 번에 한 가지 도구만을 꺼낼 것이다. 주6)
결론
각각의 게시 시스템은 저마다의 용도를 갖고 있다. 게시판은 대등한 관계를 갖는 게시자들이 의견을 교환하기에 적합하고, 블로그는 필자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게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위키위키는 다수의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지적 체계를 형성할 때 활용할 수 있다. 글을 시작할 때에는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분석에 들어갔지만, 기술적인 특징들이 어떻게 용법을 달리하게 만드는지를 살펴보고, 각각의 기술들이 발전하여 통합될 수 있음을 알아본 이후에는, 게시 시스템의 구분은 용법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언표의 종류에 따라 미디어를 택할 것이고, 이것은 맥루한의 방식대로 ‘인터넷 미디어도 메시지이다’라는 은유적 어법으로 표현될 수 있다.
참고자료
* 레퍼런스 사이트
(1) http://c2.com 위키위키의 발상지. Design pattern등 컴퓨터 사이언스에 관한 정보들을 다루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2) http://wikipedia.org 위키위키를 이용한 백과사전.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공유정보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3) http://no-smok.net/ 국내 위키 사이트의 효시. 효과적인 위키 사용을 위한 새로운 문화를 실험하고 있다.
(4) http://wik.ne.kr/ 한국어 블로그 모임.
* 소개 사이트
(5) http://en2.wikipedia.org/wiki/Weblog 블로그에 대한 소개.
* 웹 애플리케이션
(6) http://moin.sf.net 위키위키 중 하나인 모인모인. no-smok.net도 모인모인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7) http://movabletype.org 펄로 작성된 오픈소스 블로그 중 하나인 무버블 타입.
(8) http://zeroboard.com 한글 오픈소스 게시판의 대표작인 제로보드.
각주---------------------------------
1) 이 글이 귀납적으로 결론지을 내용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연역법으로 표현했다.
2) 게시판에서 글을 퍼옮길 때 흔히 쓰는 Copy and Paste는 원본이 바뀔 경우 복사물에 변경사항이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 backtracking은 원본의 변경사항이 참조물에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3) 하이퍼링크와 같은 개념이다.
4) 이런 특성들을 활용해 백과사전을 만드는 사이트가 있다. 자료를 수집하고 감독하는 편집진이 없음에도 상당한 품질을 가진 표제어들이 십시일반의 노력으로 갖추어져 있다. (참고자료 2)
5) http://no-smok.net/nsmk/_c3_ca_ba_b8_c0_c7_c0_a7_c5_b0_be_b2_b1_e2
6) 통합 기술이 새로운 미디어를 창출해낼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미디어 나름의 도구가 되어 도구상자에서 독립적으로 꺼내어 쓰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