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사람 중 한 명을 마음 속으로 정해 보자. 그 사람을 전철에서 아무런 약속 없이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금부터 얼마나 시간이 더 흐르면 만나게 될까? 전철을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십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확률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반면 전철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 중 아무나 만나게 될 확률은 어떨까? 내 경우는 이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전철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앞서의 확률에 내가 아는 사람의 수를 곱한 만큼의 확률이므로 그렇게 드문 경험은 아닌 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란 전철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다. 생각하기 쉬운 좋은 아이디어는 이미 옛날 사람들이 다 선점해 두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준비해둔 다음에는 행운이 내게 찾아올 때까지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언제나 애가 타기 마련이다. 특히 기다리는 대상이 내게 중요하다고 생각될 수록 그렇다. 그러면 마음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조급하게 일을 밀어붙인 나머지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기다리는 마음의 조급함을 달래고, 기다리는 시간을 실제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여러 상대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매달리지 말라. 평소에 관심있던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에서 뭔가 더 필요한 것은 없을까 생각해 보라. 생각이 안 난다면? 더 고민하지 말고 다른 책을 읽어라.
써내야 할 한정된 주제의 논문이 있거나, 비용을 절감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식의 "한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일 때에는 이 글이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지 말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란 말은 정의상 일반적인 절차에 의해 개발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해결할 수 없으면 피하라. 가급적 특정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처신하라. 그렇지 못하라도, 적어도 여유만은 지켜라. 이번에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다음에 다른 기회에는 다른 분야에서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고 확신하라.
2003년 1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