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간략한 에세이.
작년 2학기 과제용으로 쓴 건데, 컴퓨터 뒤적거리다가 발견되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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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컴퓨터학과
99200087
이성호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그 사물이 무엇일 수가 있는가에 대한 선행적인 인식틀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대상을 마주할 때, 그것을 규정할 만한 배경을 갖고있지 않다면 허둥대는 동안 그 대상과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현실과 부합되든 그렇지 않든, ‘저 대상은 무엇이다’라는 규정을 갖는 것이 대상을 인식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17세기 이래 세계로 눈을 돌린 서양에게도 마찬가지의 요구가 닥쳤을 것이다. 유럽의 각국은 경쟁적으로 확장된 세계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확보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축적되고, 재생산되어서, 유럽인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세계에 대립되는 자신의 모습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논의의 흐름 속에서 외부 세계(그 중에서 특히 근동)를 바라보는 유럽(그 중에서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시각을 다룬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저자는 문학, 언론, 역사학, 문헌학 등 풍부한 자료와 인물들을 근거로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을 파헤친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동양에 관한 이미지를 모으고, 문헌을 정리하고, 탐험하고, 언어를 연구해서 동양을 표상하는 담론을 형성시켰다. 이렇게 ‘창조’된 동양은 기괴하고, 선정적이고, 신비스럽고, 낭만적이다.

서양은 동양에 기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방적으로 동양에 관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이 확보한 우월적 관계는 열등한 동양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그것이 정설로 자리잡고, 그것으로 바탕하여 2차 3차의 담론이 파생되어서 자기증식을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은 지식의 차원에서 서양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일상적 맥락에서 말하는 ‘선입견’이라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다. 오히려 ‘선입견’없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올바른 ‘선입견’을 갖고 대상과 발전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리엔탈리즘>이 분석한 유럽의 동양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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