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사 준 삼백 원짜리 고급 메모장을 갖고 학교에 갔었다. 어른 손바닥보다 약간 큰 크기에 앞뒤로 파란 반투명 플라스틱 표지가 있고, 위쪽이 스프링으로 묶여진 것이었다. 뒷표지 쪽엔 엄마 글씨로 '1학년 8반 이 성호'라고 씌여 있었다. 나는 여기에 숙제를 적어 가거나 친구들의 주소 같은걸 적을 셈이었다. 그런데 가져간 첫 날, 한 글자도 쓰기 전에 교실 어딘가에 흘려버렸다. 얼마 안 있어 어떤 녀석이 이걸 주워서는 주인을 찾으려고 주의를 끌었다. 내가 곧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내 메모장이라면서 달라고 했지만, 어이없게도 나는 내 물건을 바로 손에 넣지 못했다. 그 녀석의 말인 즉, 이게 내 거라는 근거가 어디 있냐는 얘기였다. 나는 뒷장을 펴보이며 "여기 봐, 내 이름이 써 있잖아."라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건 '이성호'라고 쓴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녀석은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수첩에 적힌 이름을 보였다. 그러나 "잘 모르겠는데"라거나 "니 이름을 적은건 아니야"라는 대답 뿐이었다. 결국 난 내 수첩을 돌려받기 위해 아이들이 선생님께 그것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개발 경력 8년차라는 과장과 초보적인 문제를 갖고 입장이 갈려서 오랫동안 설전을 벌였다. 그것도 오늘 하루에만 두 건이나 갖고 입씨름을 했다. 처음엔 내가 리팩토링한 클래스가 인터페이스가 바뀌었다며 불평이었다. 가만히 둬도 잘 돌아갈 클래스를 왜 쪼개서 더 복잡하게 만들었냐는 것이었다. 나는 클래스를 쪼개는 것이 더 나은 설계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열 가지는 넘게 들 수 있었지만, 과장은 그런 것은 물어보기도 전에 클래스 구조가 바뀐 것부터 불평하면서, 그게 문서 작업에 얼마나 귀찮은것인지 젊잖게 가르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예외 처리 부분이었다. 이번에는 과장이 핵심코드를 짜야 하는 모듈이었는데, 예외 처리를 모두 반환값을 통해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바 라이브러리가 Exception객체를 던져 주는 것을 catch로 막아 가면서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서라도 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배운 뒤였다.
2003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