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풍경

월요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러 회사에 나갑니다. 역삼역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조촐한 사무실에서 JSP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역삼역 주변은 이른바 테헤란밸리라고 불리는, 끝없이 높이 솟은 대기업 사옥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많은 건물들이 지은지 5년 안팎의 것들이라 요즘 지어지는 건물들의 주요 경향을 많이 따릅니다. 주로 푸르스름한 유리로 벽면을 대신하고 날개 같은 철제구조를 그대로 뻗어내는 스타일이 그것이죠. 이걸 뭐라고 부르는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로타워나 동아일보 사옥을 떠올리면 '아, 이거구나'하실 겁니다.

그 건물 높은 곳에서 서울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일을 하는것도 흥이 나는 일이겠지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바라다 보기 가장 좋은 위치에서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맵시있게 뻗은 건물이 곁들여지는 기분도 꽤나 산뜻합니다. 사무실에서 나와 역 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LG강남타워가 보입니다. 이 건물은 바로 앞에서 잔뜩 올려다봐서는 건물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힘듭니다. 너무 가까운 곳에 왔거든 LG아트센타의 공연 현수막을 구경하는 쪽이 더 좋을 겁니다. 동쪽을 향한 건물의 앞면이 아닌, 남동쪽이나 북동쪽에서 건물의 옆면을 3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살짝 올려다 봤을 때 가장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철 구조물이 강조된 다른 건물들은 푸른 유리로 덮힌 모습이 겨울엔 퍽 써늘해 보이는데, 이 건물은 다릅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 새파란 하늘에 걸쳐진 그 건물의 모습이란, 흡사 무역선이 순풍에 돛을 잔뜩 올린 듯 합니다. 철 구조와 푸른 유리를 참을성 있게 사용해서 차가워 보이지 않고, 건물 오분의 삼 정도를 기준으로 아래로 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는 과감한 디자인이 세련미를 더해줍니다. 눈으로 보는 폭탄 같은 상스런 건물들이 도처에 있는 가운데서 이렇게 멋드러진 건물을 발견했다는 것과, 이것을 매일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출근길의 피로가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2003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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