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안 올 것으로 생각하고는, 천안에 가서 쫄딱 맞았다.
* 천안은 시내버스 요금이 800원이다. 차는 20년은 된 듯한 고물버스다. 길이 막히지 않아도 힘이 부쳐 속력을 못 내는것 같다.
* 천안에도 명동이 있고, 충무로도 있고, 스카라극장도 있다. 명동에는 천안의 밀리오레 격인 '르 씨엘'이라는 쇼핑몰이 있다. 스카라극장은 성인물 상영관이다. 천안의 어느 거리가 어느 거리이지 못하고 서울의 기표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씁쓸하다. 천안 삼거리와 호두과자만 제외하고 대체로 그렇다.
* 독립기념관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다.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 매표소, 앞뜰을 거쳐 본 건물까지 가는데 삼십 분 걸렸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보이던 건물은 가도 가도 커지기만 할 뿐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건물 앞에 왔을 때에는 전신을 압도하는 스케일 때문에 높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전시물도 크기로 승부하는 모양이다. 광개토대왕비 모형은 실외, 실내에 하나씩 있고, 황룡사 모형, 거북선 모형, 전투장면을 재현한 각종 인형들부터 조선일보에서 썼다던 윤전기까지, 한 크기 하지 않으면 자랑이 안 되는것 처럼 덩치를 뽐낸다.
그럼에도 전시물들은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안락한 애국의 길을 가고 있다. 혁명은 신채호를 통해 말해지고, 항일운동은 민족주의계열의 전유물인듯 하다. 피억압자의 저항정신은 웅장하게 받들어짐과 동시에 박제물의 신세가 되는 법이다. 들어가는 길 어귀에 있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의 글귀가 이를 증명하는 듯 하다. 제 겨레를 학살하고 일어선 정권이 세운 "겨레의 집"은 위압적인 자태에 비해 공허해 보인다.
2002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