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알고 있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태어난 뒤부터 얼마간 부산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시의 자세한 상황에 대한 지식이 모자란다는 뜻일까? 그럼 내가 어떤 집에서 살았고, 내 하루 일과는 어땠으며, 아빠의 귀가시간은 언제였고, 주말엔 어디로 놀러갔는지를 이야기를 듣고 소상히 알게 되면 나는 그때를 기억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은 당시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것일까? 그럼 그 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 녹음, 집에서 나던 냄새 등을 경험하게 해 주면 그 때를 기억하게 되는 것일까? 아예 그 체험의 현장각을 극대화시켜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해 주면 어떨까? 그로부터 얻은 기억은 과거에 대한 기억일까? 현재의 체험의 일부일까?

기억은 과거의 체험에 대한 감정을 재생하는 것일까? 그럼 뛸 듯이 기뻤던 과거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떠올리는 것은 기억일까, 아닐까?

기억과 관련된 질문들은 모두 경험과 연관이 있다. 이번엔 좀 더 근본적으로 물어보자. 기억을 하기 위해 꼭 그 기억에 해당하는 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한다. 있지 않은 일에 대해 환상을 떠올려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현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억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의 내지는 환상을 품으면 얼마든지 가공의 기억을 만들 수 있다. 집단적으로 조작이 일어나므로 타인의 기억과 모순되지도 않고 현실에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니 기억을 부당하다고 할 근거가 없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바나나 농장과 대학살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되었다.

좀 더 파고들만한 것은,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보증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에 경험한 무언가가 꿈인지 생시인지 알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에 의존해 인과관계를 역행해서 개연성 있는 원인이 나오면 그것은 사실이라고 믿어진다. 하지만, 그나마도 추측에 불과하다. 그런 인과관계가 반드시 지켜졌으리라는 보장이 또 필요한데, 그걸 확신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기억은 선반 위에 감춰진 눈깔사탕과 같다. 먹고 싶어 애를 써 손을 뻗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결국, 레이첼의 눈물은 누구의 눈에서도 흐를 수 있고, 과거가 분리된 후의 기억은 지식과 이미지, 감정의 묶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과 마찬가지로 가상이 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시간을 초월해 의미를 가진다. 입양아가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나서는 일이나, 의문사한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이나, 화장실에 앉아서 어제 먹은 저녁식사를 떠올리는 일까지 모두 과거의 창고로 퇴행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밝히기 위한 일이 될 수 있다.


2002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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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용산 버거킹에 또 갔다가 ^^ 끄적거린 건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루 묵혔다.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뭐 나중에 정리가 되겠지 하고 올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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