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환경이 어떤건지 모를 정도로 애매한 경우에는 그냥 아무데서나 배워라 -.-;;
대부분은 누구나 동의할 정도로 뚜렷한 대조가 나타나거든. 예를 들어 서구물질문명, 서울, 지중해성 기후, 대학은 동양문명, 지방, 냉대기후, 초등학교보다 대체로 좋은 환경이지.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들 위주로 꼽기만 해도 거기에서 배울건 산더미같아. 다행히도 애매한 것들의 작은 차이에 현미경을 갖다대야 할만큼 인생이 길지는 않아.
물론 무엇이 비옥한지는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거야. 생태연구를 하기 위해선 대체로 도시가 좋지 않지. 연구대상에 따라 좀 더 비옥한 곳을 찾아가야 할껄.
그 글을 쓰게된건 <총, 균, 쇠>라는 책을 읽다가, 문명이 환경이 아주 비옥한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부족한 환경에서 일어난 자생적 문명을 누르고 점차 퍼져나가는 경향을 보고, 단순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지.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의미가 모호해지면서 해석에 따라 또다른 진리를 품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게 시나 격언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요즘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이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모든걸 수량화해버리고 한 줄 세우기를 해버리니까 옆을 볼 새가 없이 한 칸이라도 줄 뒤에 서있는걸 조바심내해. 같은 값이면 영어점수가 높은게 좋고, 명문대 출신이 좋고, 동향이 좋고, 부자가 좋고... 물론 다 맞는 얘기지. 그런데 문제는 '같은 값'이라는걸 너무 쉽게 가정해버린다는 거야. 각자 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들도 각자가 다른데, 스스로가 원하는 것들에 귀기울이고,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서서 '같은 값'이 돼버린 다음에 이런저런 숫자들에 목을 메지. 같은 값들의 경쟁에서 남들을 누를만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운수 없는 사람들은 그저 피곤한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을거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라고 자신을 표현한게 뉴턴이었던가? 중요한건 내가 올라가 있는 거인이야. 멀리 보고싶으면 산에 올라갈 것이지 자기 키가 작다고 원망할건 못 돼. 뉴턴과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같은 시대의 중앙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어디쯤에 살았다면 그런 업적을 남길 수 있을까? 사람을 만드는 건 개인의 재능보다는 환경이라고 봐. 사람의 키보다 산이 훨씬 높듯이.
나는 의식적으로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 관리를 해. 좀 더 비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지. 남들 다 올라가는 산에 묻어 가서 키나 시력을 원망하진 않을거야. 다른 산에 올라서 다른 곳을 볼테니.
2002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