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동경 2000/08/24 16:38:22 유니텔 kuorch

1.

헐리웃 영화를 본다.

그 화려한 영상, 상상하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대담함. 그래도 왠지 편하지는 않다.
배우는 그곳에서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허상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가고 싶어도, 그 세계에 뛰어들어 직접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도, 보이는 것은 특수효과 담당자들의 밥벌이일 뿐.
얄팍한 스크린, 꼭 그만큼의 깊이만을 담고 있는 그림들이 동경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스크린과 나 사이의 무거운 대기층을 느낀다.

2.

아까운 청춘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음을 만드는 데 얼마나 소비했는지 모른다. 음악이 듣고싶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데, 뭐하러 그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소리를 내려고 그 고생을 하는가?

음반 너머에서는 연주가가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악보에 누워있는 음표를 일으켜 세운다. 거역할 수 없는 감정에 가장 충실한 시간이 바로 이 때다. 작곡자-연주자-청중이 공명하는 그 생생한 현장을 나는 동경한다. (연주자가 없는 음악은 헐리웃 영화같다.) 음반 너머 열려있는 세상, 그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연주자의 자리에서 직접 호흡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손에서 악기를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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