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음악이 있는 풍경>
바흐는 철저한 노력파였다. 그의 음악은 대부분 교회 행사용으로 쓰여졌고, 그에게 요구되는 작업량은 정말 엄청나고 지긋지긋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작품에 그는 피땀의 노력을 기울인다. 음악의 희망으로서의 연습곡. 아름다움의 과정이 엑스레이 사진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의 의상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열어주는 창으로 작용하는, 그런 연습곡적 성격을 바흐의 거의 모든 작품이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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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디아벨리라는 음악 출판업자가 있었다. 그는 아마추어 작곡가였는데, 명예욕에다가 장사꾼 기질까지 겸비한 자였다. 명예욕과 돈 욕심을 동시에 채우려 혈안이 된 그에게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출판업자인 내가 선율을 주고 유명 작곡자들에게 그 변주곡을 써달라고 부탁, 그것을 공동창작물로 출판하자...
베토벤은 디아벨리에게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고 그가 경멸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그도 바흐가 바흐다웠듯이, 아주 베토벤답게 음악적으로, 그러나 바흐와 달리 의식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가 바로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디아벨리 변주곡'은 한마디로, 이런 곡이 정말 변주곡으로 가능하단, 아니 했단 말인가... 그렇게 듣는 귀를 의심케 만드는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