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세계여행>

이 영화를 보면 90년대 초반에서 중반 즈음의 컴퓨터 게임들이 생각난다. 새로운 표현양식에 대한 열광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빚어내는 서툰 영상이 그다지 싫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당시의 게임과 이 영화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 새로운 표현양식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지 당시로서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무엇을 표현하든 최초가 되는 것이었고, 어떤 기법을 시도하더라도 최신 기술이 되는 것이었다. 까마득히 남아있는 청춘을 자각하기 시작한 십대 소년처럼, 뭔지 모를 기대감에 설레어하던 시기였다.

그 설레임은 작품의 줄거리에 그대로 반영된다.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주제들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설레임을 억누르고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한다는 주제는 <달세계여행>의 핵심이다.

한편으로 게임이 태동하던 시기에도 그랬다. 초기에 등장한 게임장르는 슈팅과 퍼즐이었으나, 이내 이야기 구조가 있는 어드벤처와 롤플레잉이 등장하면서 게이머들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롤플레잉의 원류 <울티마>, 시에라와 루카스 아츠의 고전 어드벤처들의 동기는 모두 <달세계여행>의 그것과 통한다. 아직 여행을 시작하는 설레임에 사로잡혀 있는 현재의 MMORPG게임들 역시 <달세계여행>의 21세기 수정판이다.

20세기의 선물답게, 영화는 표현기법과 내용 모두 급속하게 발전해 나갔다. 인간생활의 내밀한 면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담론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영화, 심각한 영화, 젊은 영화, 중후한 영화, 감각적인 영화, 이성적인 영화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든 주제를 영화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가 영화답기 위해서 기존 예술 장르를 벤치마크하며 고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영화가 그 스스로의 전통을 세우고, 학學을 이루어가는 단계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영화에서 게임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긍정은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되면서 조금 더 확실해졌다.

2004년 10월 24일에 처음 쓰고 2005년 3월 12일에 마무리

pocorall 님이 March 12, 2005 1:19 AM 에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