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이야기>: 자신의 운명과 함께하기
때로 현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에게만 가혹한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하고 완고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 혹은 부조리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운명의 손짓으로부터 저항하고자 발버둥치지만, 헛된 노력만을 소모하고 안쓰러운 풍경을 연출할 뿐 결국에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한편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운명을 직시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는 조용히 미소짓는 여유를 체득하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법을 익히는 과정인듯 하다. <동경 이야기>는 자기 안의 상반되는 감정들과 가족 관계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식들은 부모의 방문에 자신들의 일상이 변화를 겪는 것을 불편해 하지만, 마음만큼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곰살맞게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일상을 지탱해야 하는 그들의 사정을 덮어두고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로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도 영화는 갈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찬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자식으로부터 자립해 있고, 유쾌하고 쿨한 성격의 부모라면 어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단기간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이 가족관계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을 두고 맺게 되는 가족이라는 인연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다 늙은 부모와 자기 일에 바쁜 자식들은 그저 서로의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시부모를 한결같이 극진히 모시던 노리코가 어린 교코에게 해주고자 한 이야기도 이런 뜻이었으리라.
고향에 홀로 돌아온 노인에게 "외로워 지실 거에요"라고 무심한 듯 유심한 듯 말하고 돌아서는 이웃집 여자의 말처럼, 고독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이다. 서로의 고독을 지켜봐주던 동반자가 떠난 후에도 극단적인 감정의 동요 없이 "아 그렇군요", "뭘요", "고마워요"라는 식의 대답으로 일관하고 조용히 부채질을 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삶을 관조하고 당도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모습과 함께 그 이면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함께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