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 책은 연애소설이다. 주인공이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옆 자리에 앉은 여자와 사귀게 되어,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도 같이 하고, 동거도 하고, 다투고, 상대가 바람 나고, 결국 깨져서 자살할까 생각도 해 보고, 그러다 자신도 새 사랑을 만나기 시작한다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이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에도 안 나올법한 뻔한 줄거리로 책을 써 낼 용기는 철학도인 작가의 이력에서 나온다. 이 책은 소설과 (아주 주관적인) 철학 개론서 형식이 혼합된 것으로, 연애 과정에서 겪을 법한 문제들에 대한 분석적인 통찰력이 소설의 줄거리를 타고 펼쳐진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를 등장시킨 건 포괄적인 연애론을 다루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연애란 이런 것이다:
이성에게 마음을 뺏긴 사람은 논리적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상대와 내가 어떤 운명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와 내가 우연히 만날 희박한 확률이 현실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놀라워하고, 공유하는 환경이나 정서를 발견하는 것은 모두가 기쁨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면 나고 원하고 싶어지고,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관심이 곤두선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해지는 것은 기표일 뿐, 나의 불타는 기의는 온전히 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은 시인이 된다. 상대가 고전주의적인 완전한 비례를 이룬 외모를 갖추지 않았어도 거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불완전함이 나의 미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천사가 아니라 사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사소한 문제로 실망하거나 다툰다. 채소가게 주인의 촌스러운 양말은 너그럽게 이해하는 나는 애인의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는 기어이 불만을 표시하고 만다.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묘약은 웃음이다. 그 중에 둘만이 알아들을 수 이는 언어로 던지는 농담은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사랑이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듯, 이별도 운명적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말과 몸짓이 언제부터인가 공허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면서 불안한 관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는 없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은 하고 둘은 연인처럼 행동하고 있으므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해 토라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약이 없다. "네가 토라지지 않게 내가 사랑해 줄께"라는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듣는 사람이 액면대로 받아들이게에는 무리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된다. 나의 세계는 무너지고 인생은 보잘것 없는 것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품에서 여전히 행복한 그에게 나의 고통을 알리고 죄책감을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살이다.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수에 그쳤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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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영국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단다. 이 책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쓴 첫 작품인데, 철학도 철학이지만, 연애도 어지간히 많이 해봤나보다. 아주 도가 텄다.
2002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