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승] 반성 99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처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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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시집에 부제를 단다면 '폐인생활, 이보다 심할 순 없다'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가난하고 허약한 이 백수는 도덕선생처럼 '그럴수록 밝고 희망찬 생각을 가져야...'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는 의식의 진통제로 버티기를 거부한 대신 자신의 고통스런 처지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에 비하면 지극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의 시가 울림을 주는 것은 그 솔직함에서 나오는 영롱한 성찰 때문이다.
2001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