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에 관하여

1.

며칠 전, 대구에 갔었다.
외가집에 하룻밤 들러 인사나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내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성호가 누고?

'성호는 누구누구 아들이오'라고 했더라면 혹 알아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이름 들이밀어 아는척 할만큼 이쪽에서도 아쉽지가 않았다. 아, 잊혀짐이란!

서글프고 무섭기까지 하다. 기억에서 지워져 버리고, 만남이 오히려 어색해지는 것은 그리움보다 더 가혹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리움보다 아름답지는 않다.

2.

진중권, 유시민, 김정란, 조갑제, 김대중, 유석춘, 박노자, 한홍구, 이정우, 유하, 오탁번, 황동규, 한성복, 함성호, 권택영, 라캉, 푸코, 들뢰즈, 니체, 움베르토 에코, 곰브리치, 벤야민, 호프스태터, 포퍼, 에릭 홉스봄, 시드 마이어, 맨큐, 숭안 선사, 마이클 캐넌, 이상, 김남주,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 노무현, 이회창, 박종웅, 김민석, 피카소, 사르트르, 법정, 이윤기, 이문열, 이성복, 강준만, 맑스, 황지우, 탁석산, 양운덕, 신해철, 레드제플린, 렘프레히트, 드림씨어터, 황광우, 추미애, 체 게바라, 마르코스, 빈 라덴, 조지 부시, 카치아피카스, 임지현, 고흐, 기형도, 스티븐 호킹...

7개월동안 마셔댄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아 속았군
이들은 끝없는 갈증으로 유혹하는걸

목이 타 죽기 전에
잠시 잊기로, 아니 그리워 하기로 했다


2001년 9월 27일

pocorall 님이 September 27, 2001 1:43 AM 에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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