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와 베오울프 컴플렉스

먼저 아래 동영상을 보자.

이 영상을 보고 언뜻 떠오른 다른 이야기가 영화 베오울프다. 치명적인 유혹에 끌려간 대가로 무시무시한 저주에 처하게 된다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이다. 생물학적인 부자 관계는 아니지만, 다음 왕이 될 용사에게 대를 이어 저주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경각의 수준이 한층 더한다 (흥미롭게도 위의 영상에서도 공주를 구하는 열쇠를 상점 주인에게 넘겨줘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여자 문제로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불안감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서 남자들의 보편적인 정서로 깔려 있는 듯하다. 이런 종류의 불안감은 베오울프 컴플렉스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영화 <박쥐>를 보았다. 음산한 분위기는 탁월하게 표현해냈는데, 한구석이 찜찜하다. 왜 이리 기운이 없을까. 어두운 영화라면 나름의 어두운 기운이 충만해야 할텐데. <박쥐>는 베오울프의 불안감이 깔려 있는 영화다. 신부 상현은 알 수 없는 유혹에 의해 과학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고, 태주와의 은밀한 관계를 통해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어간다. 여자는 남자를 점점 더 곤경에 빠뜨리고, 남자는 욕망과 운명이 끄는 수레에 어쩔 수 없이 끌려 가는 모양이 된다. 그렇다고 베오울프처럼 속물적인 정서를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것도 아니긴 한데, 이런 어정쩡함이 문제다. 흡혈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도, 태주와 상현은 강우의 환상에 시달리는데, 영화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런 초라한 죄의식과 극단적인 수동성을 향유하다가 덮어버리는 데에 그친다. 피, 익사, 물침대, 수요일과 같은 눅눅한 이미지만을 환기하다가 아침 햇살에 살균을 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감독의 고백을, 굳이 우리의 시간을 들여서 들어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조커가 빠진 배트맨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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