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

세상에 확실한 것은 어느정도나 될까?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언제나 갈망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채우려고 한다. 신념은 확고한만큼 고통을 안겨준다. 사업을 하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업은 이러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저러저러한 기술적 경쟁력 덕분에 성공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은 잘못될 수가 없는 아이템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요구하는 것만큼 못미더운 것은 없다. 결과에 관한 믿음은 목적론적 사고와 연결된다. 과정은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며 의미도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공을 믿는 자는 실패를 부인하겠지만 얼마든지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패할 경우에 돌아오는 심리적 공황은 본인과 주변인들이 짊어져야 할 잠재적 짐이 된다.
반대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러이러한 점에 희망을 걸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잘 될지 안 될지는 부딪혀 봐야 알겠지요. 그게 사업 하는 묘미 아닙니까" 삶은 사건을 통해 물리적 운동으로부터 의미를 형성해가는 해석의 과정이다. 그렇게 매일 창조적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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