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걸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토요일 밤에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다 오랜만에 한 후배를 만났다. 기말고사 이야기, 동아리 이야기, 진로 이야기로 형식적인 시간을 보내다가 후배가 따분해 졌는지 다른 화제를 꺼냈다.

"형, 네이버에서 '모나미걸'로 검색해서 사진 좀 보세요.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연예인보다 더 예쁜 여자를 봤어요. 그 사진 보면 형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하고 바탕화면에 깔아놓게 될지도 몰라요."

이런 좋은 정보를 그냥 흘릴 리가 없다. 집에 가자마자 모나미걸을 찾았다. 정말이다. 어지간한 아이돌가수가 서러워할 만큼 산뜻한 이미지였다. 옅은 갈색의 긴 생머리, 계란형 얼굴, 짙은 쌍꺼풀의 큰 눈, 하얀 털 가디건. 열람실에서 입술에 모나미 볼펜을 살짝 대고 무엇을 생각하는 양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로 바탕화면에 깔아놓을지를 고민하다가 문득 상상력이 발동했다.

저 사람도 전공 과제로 밤늦게까지 골치를 썩기도 하고, 학점에 일희일비하고, 졸업 후의 일에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가진 보통의 대학생들이 하는 일들을 하겠지? 용돈은 어떻게 마련해서 쓸까. 그날 입을 옷을 고민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학교앞 식당에 가면 순두부 찌개를 시킬까 비빔밥을 시킬까.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걸 좋아할까 몇몇 친구들끼리 단촐하게 만나는 것을 좋아할까. 부모님은 권위적일까 친근할까.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것은 그의 생김이나 행동을 보고 좋아한다거나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팬이 된다는 것은 이미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알고 싶어하고, 그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기대와 다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조금만 성가신 일이 있어도 짜증을 낼 지도 모르고, 만화책이나 무협소설 이외의 책은 따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을 거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좋을 거라는 기대를 할 것인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실망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것이고, 그 선택은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긍정적인 기대를 품는 것이 인간에 대한 믿음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은 우선적으로 이미지에서 나온다. 그것이 우리가 외모를 찬양해도 죄가 되지 않는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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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June 11, 2005 11: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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