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그 매혹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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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천박하게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겠다. '플레이걸이 순수한 청년을 만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여기에서 남녀만 바꾸면 <스캔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고독함에 몸부림치는 <사랑에...>의 인물들이 짙은 연민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스캔들>에 나오는 인물들의 고뇌와 나 사이에는 두터운 방음유리 같은 것이 있는것 같다. 연애게임을 너무도 가볍고 철저하게 즐기는 모습이 한 겹의 유리요, 날아갈 듯 가볍게만 보이던 인물이 영문도 없이 갑자기 사랑을 떠안고 허우적대는 모습이 또 한 겹의 유리가 되어 이곳과 저곳을 든든히 분리시킨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영화는 이야기 구조만 비슷했지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스캔들>은 오락영화이지 않은가.

<스캔들>은 <누구나 비밀은 있다>같은 영화와 동류로 놓는 것이 더 의미있다. 바람둥이의 이야기를 가볍게 묘사한 오락영화가 인기리에 반복되는 것에서 어떤 경향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선망하지만 소수만이 누리는 특별한 경험은 오락영화에서 즐겨 삼는 소재이다. 근육질 액션이나 부자들의 이야기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바람둥이 영화의 등장은 대중들의 성의식 변화에 대한 지표이다. 바람둥이의 자유분방한 연애담은 도덕적으로 지탄받기보다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은근한 선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한들 어떤가. 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범죄는 비도덕적이지만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바람둥이의 이야기도 이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다른 한 편으로 바람둥이 영화의 등장은 대중들의 의식변화가 초기 단계에 있음을 동시에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직 쑥쓰럽거나, 기술이 모자라거나, 노력이 모자라서 영화의 인물들처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는 못한다. 소위 '작업'이란 것이 결혼 10년차 부부의 일상과 같은 것이라면 오락영화의 소재가 될 이유가 없다. 연애를 단지 게임으로 즐기면서 양다리, 세다리를 걸쳐내는 수완은 아직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기에 사람들은 극장에서 그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대중들이 아직 바람둥이의 매혹에 드러내놓고 빠져드는 것을 주저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스캔들>은 일회용 연애담을 끈적한 사랑으로 봉해놓는 것으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다.

바람둥이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여전히 우리들은 바람둥이의 유혹을 영화로 충족하게 될까, 우리가 바람둥이가 될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깨닫고 다시 사랑을 외치게 될까? 우리는 지금 어떤 경계선에 걸터앉아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1 Comment

허니는 바람둥이가 되련다.. 매력있지 않은가~~~~~
그렇지 아니하다면. 내버려 두지 않았겠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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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November 30, 2004 2:0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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