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관

역사라는건 묘한 것이다. 낡아빠진 쇳조각이나 사기 조각이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습도와 온도가 조절되는 방에서 소중히 모셔지도록 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어던 쇳조각이 역사적 물건이라고 해서 비슷한 나이를 먹은 다른 쇳조각이랑 물리적으로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잔뜩 녹이 슨 것이나 지금 사용하기에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옛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고 옛날 물건은 옛날 물건이지, 물건에 이야기가 얽혀있다고 해서 물건이 있어야 이야기가 있는 것인 양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알면서도 버리기 힘든 묘한 버릇이다.

한국인들은 현명하여 이런 버릇은 과감히 청산하는 진취적인 면을 갖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자리에는 고딕 풍인지 무슨 풍인지 잘 모르는 육중한 새 건물이 들어섰다. 학교 곳곳에는 비슷한 모양의 새 건물들이 솟아나서 교정이 롯데월드 강북별관쯤 돼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멋있다고 깨끗하다고 환호하지만, 사진 속 계단을 오르며 보냈던 여름날의 별 것 아닌 한 토막이 떠올라 나는 빈 입맛만 다신다. 겨울이면 난로를 중심으로 두런두런 사람들이 모여들던 강의실이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대학생들의 시대를 지켜왔음을 증명하는 외형은 그리 불편하지도 흉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적어도 5년째 핸드폰을 바꾸지 못하는 내 눈에는 그렇다.


2004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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