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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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는 것은 퍽이나 폭력적인 경험이다. 집 안에 질서잡혀 있던 배치가 모두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맥이 풀리는 것이다. 탈영토화를 '하는'것이 아닌 '당하는'경우의 허탈감이란 이런 걸까.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비슷한 것일까.

이사온 지 이틀만에 짐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중인 방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묘한 공간이다. 길게는 십수 년간 잊고 지내던 물건들을 발견하는가 하면, 며칠 전까지 쓰던 물건을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먼지를 마시며 힘을 쓰는 실존하는 노동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게 될 공간을 마름질하게 되는 창조적 순간이기도 하다.

십 년도 넘은 컴퓨터 잡지들은 일 년에도 몇 번씩 버릴까 말까를 망설이지만 결국 이번에도 책상 밑 한 구석에 재여졌다. 책장이 모자라서 가로로 쭉 쌓아놓고 보니 헌 책방 풍경이다. 적막을 달랠 무언가를 곁에 둬야겠다. 교향곡은 평소에 잘 안 듣게 되는데, 이 기회에 테이프 데크에 넣었다. 두 번째 연주회때 했던 브람스 4번 교향곡. 작지만 하나의 전환기가 되었던 시기의 기억들이 함께 되살아난다. 이제 [즐겁게 살기를 궁리하는|즐겁게 사는] 곳으로서의 내 방을 만들기 위해 노트를 덮고 짐 정리를 계속해야겠다.


2003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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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사라는 것을 타인과의 관계를 정리시켜주는 간편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저런, 꿀꿀한 아이디어인걸. 게다가 난 귀찮아서 절대 그런 이유로 이사 못 할거야.

이사는 한편 슬픈거야...지금 나한테는....

(아..머.. 내가 지금 이사를 한다는 건 아니구... ^^;;)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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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October 3, 2003 9: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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