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관리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가족의 엄마는 부동산 중개인이다. 성공하기 위한 자기관리법을 다룬 책을 탐독하고, 거울을 보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것을 연습하고, 팔아야 할 집을 청소하고, 상냥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글자 그대로 '프로'가 되기 위해 자신self을 경영management한다. 불행히도 노력만큼 결과가 좋지 못한 그녀는 삶의 기준을 잃고 실의에 빠진다. 자기 관리를 통한 행복이란 어떤 종류의 것일까?

'자기관리'라는 말도 '자신과의 싸움'만큼이나 허구적이다. 스스로를 위해 자신을 관리할 필요는 없다. 물이 그저 아래로 흐르듯,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자기가 자기임을 누리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자기를 관리해야 하도록 만드는 원인은 외부에 있다. 관리는 항상 '무엇에 의한'것이다. 이 전제가 생략되다 보면 '자기관리'라는 모순된 단어도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스스로가 아닌 것으로 고치도록 만드는 여러 힘들의 근원에는 대체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 자본의 순환에 적합한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십수 년간 '자율'학습을 통해 관리하고, 각종 투기 기법을 익혀서 재산을 관리하고, 안정된 고용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력을 관리해야 하고, 사무실 생활로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몸을 헬스클럽에서 관리해야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청렴, 청결, 매너까지도 관리하도록 만든다. (기업에서 아웃소싱하는 이미지메이킹 교육을 보라. 이미지메이킹은 말 그대로 실재와 무관하게 표상image을 만드는making 일이다.)

험한 세상에서 상처받는 것에 무뎌지도록 자학하는 안쓰러운 광경이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그 쓰라림에 겁을 먹고 스스로 조심하도록 만드는 서글픈 광경이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2003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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