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우리 집에서는 일 년 넘게 동아일보를 구독한다. 여유가 생기는 대로 곧 내 돈으로 한겨레를 구독신청 할 생각이지만, 동아일보도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챙겨보곤 한다. 안티조선 덕택에 조선일보가 다소 몸을 사리는 모양을 하는 동안, 동아일보가 그 자리를 노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 일간신문 1면 제목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을 뽑아내는 데가 여기다. 이 신문은 정치적 지향성의 문제는 둘째로 하더라도, 수사의 유치함과 자극성이 관전 포인트다.


"민주화 聖地가 무법천지로"

18일 열린 제 23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파행으로 치달은 거은 무기력한 공권력과 불법단체인 한총련의 안하무인적인 집단 행동이 원인이었다. 행사 참석자들은 "숭고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자리가 무법천지로 바뀌었다"며 "불법시위에 대해 경찰이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개탄했다. <2003년 5월 19일 3면>


이름이란 내용에 맞게 짓기 마련이지만, 잘못 부르면 이름이 내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광주폭동"이 일어난 곳을 "민주화 성지"로 바꿔 부르면, 어떤 사람에게는 "무법천지"와 대조되는 엄숙하고 권위있는 공간으로 내용이 바뀌는 것이다. "격렬한"시위였다고 기껏 실어놓은 사진이 일반적인 연좌농성인 어제의 일이 "무법천지"였다면, 시민들이 총을 들고 싸운 23년 전의 일들은 무엇일까? 이것은 번역의 문제에 가깝다. '컴퓨터'를 '전자계산기'로 옮기면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듯이, '폭동'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던 것을 '민주화'로 부르라고 하니 내용을 바꿔 이해해 버리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우발적'이었음을 주장하면서, 결과에 대해 자성하는 한총련의 입장도 실어야 한다는, 지극히 중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지적을 하기에는 국어실력이 미달이다.

2003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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