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상 속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영글어 가는 모습이 좋구나. 군대란 곳에서 겁없이 편지에 쓱쓱 담아내도 멀쩡하게 전달되는 걸 보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도 들고, 베짱 두둑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전에 신해철의 군대 시절 얘기를 해줬던것 같은데,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27살때 군대 갔더니 스무 살짜리 고참이 틈만 나면 인생강의 하는 통에 고역이었다고... 갓 스물 넘어서 군대 물 먹고 고참 돼서, 마음에 새겨지지도 않을 말을 수고롭게 떠들고 있을 너보다, 의식있는 훈련병 김정수를 상상하는 편이 나는 더 자랑스럽다. 소통이란 게, 말을 많이 한다고 다가 아닌거 같다. 한 쪽이 다른 쪽을 경청해야 할 의무가 강하면 강할 수록 역설적이게도 소통은 어렵다. 관심 없으면 얼마든지 안 들을 권리가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화가 오간다면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지. 네가 하는 말들은 당분간 '관심 없으면 아무도 안 들어주는'신세가 될 게다. 이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에서 소통을 트는 방법을 터득하기에 가장 중요한 연습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니? 말을 하면 상대가 무조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소통이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단다. (안 겪어본 사람의 한가한 말장난이 아닐런지 걱정스럽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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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편지를 할 일이 없는게 아니었을까 싶은 사이에도 군입대를 핑계로 두런두런 편지를 주고받게 되니 이 점은 좋은거 같긴 하다. 위 글은 정수에게 보냈던 편지 중의 한 토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