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보내며

작년을 계기로 나는 그 이전과는 꽤나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두 해가 십 대 시절과는 다른 경험 속에 나를 내던지던 기간이었다면, 작년은 십 대 시절에 하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기 시작한 해였다. 인문학적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담론들이 교차하는 양태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로부터 나오는 문제의식 속에서 유연하면서 의연하게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만들어진 포코랄넷은 그 성장의 간략한 기록이다.

올 한 해동안 난 뭘 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비역도 아니면서 예비역같은 생활을 했다. 인간관계의 폭은 그다지 확장되지 않았고, 술자리에 끼기 보다는 도서관을 택했다. 써클실의 새 얼굴들은 익힐 엄두를 내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은 작년에도 만나던 사람들이고, 읽는 책은 작년에도 읽던 종류의 책이었고, 혼자 여행 다니는 것도 작년부터 하던 것이었다. 몸은 학교에 왔지만 예전의 그 학교가 아닌 것처럼 다녔다. 올해는 차라리 작년의 변주곡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이름과 모습은 같되 더 돈독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과 좀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여유로워지고, 능숙해지고, 사려 깊어지고, 유식해졌다. 주제를 좀 더 장식하면서 다채로워진 변주를 한 번 즐겼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제는 좀 다르게 살 것이다. 침잠하면서 한편으로 성숙에 조바심을 냈던 던 두 해의 경험은 나를 지붕 위로 올려주는 사다리가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치우려고 한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미완성의 시나리오를 들고 견주고 있는 상태여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어느 편이 되었든, 주인의 넉넉함과 당당함을 즐기면서 나와 주변의 배치를 만들어가고 싶다.


2002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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