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변심? 변절? 전향? 개종?
얼치기 맑시스트 이성호, 다시 시장주의자가 돼가는 걸까?
변화가 새로운 전망으로 종합되길 바라며...
경제학개론
report
정부가 민간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학부 99200087 이성호
자본주의가 발흥한 이래 국가는 줄곧 시장에 여러 가지 수단으로 개입을 해왔으며, 이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정부가 국내경제의 흐름에 손을 댈 수 있는 방법은 과세, 공기업 운영, 외국과의 무역협상, 보조금 지급, 각종 법규나 정책에 의한 경제활동 장려와 규제, 통화정책, 연기금을 통한 증시개입등 광범위하다. 모든 주제를 다 다루기에는 능력과 지면이 부족하므로 과세를 중심으로 몇 가지 중요한 요인들을 간단히 짚어 보겠다.
먼저 완전경쟁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가격이 결정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때 지불용의가 가격보다 높은 소비자들은 그 차액만큼의 소비자잉여를 얻고, 마찬가지로 생산자들도 판매용의와 가격과의 차이만큼 생산자잉여를 얻는다. 이 잉여들의 합이 극대가 되는 곳이 균형가격점이고 이것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지든 계획자가 세심하게 조절하든 마찬가지이다.
시장에 거래되는 물건에 일정 액수의 과세를 하는 경우에는 이 균형점이 왜곡된다. 소비자의 지불용의가 (판매용의+세금)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시장 규모가 줄어든다. 조세수입으로 편입된 시장성과는 국가가 적절한 곳에 소비할 경우 다시 민간에게 돌아올 수 있지만, 줄어든 시장규모로 인한 잉여의 손실은 복구할 수 없다. 어떤 식이든 과세는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과의 무역협상을 통한 정책 결정이나 관세 조절도 시장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출을 하게 되는데, 가격이 높아지면서 생산자잉여가 늘어난다. 이것은 가격상승으로 손실된 소비자잉여를 상쇄하고 남으므로 전체적으로 국가의 총잉여는 증가한다. 국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낮은 경우에는 수입을 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잉여가 늘어나 손실된 생산자잉여를 흡수하고도 추가적인 잉여를 남기므로 전체적으로 총잉여가 증가한다. 하지만 수입이 많아지는 경우에는 국내 산업이 위축되므로 실업 등 간단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역 개방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은 무역장벽을 없애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보므로, 이 때에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성과에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오염물질 배출이나 흡연과 같이 부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경제의 경우에는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가할 필요가 있으며, 소방, 교육, 국방 서비스 같은 공공재의 경우에는 경합성과 배제성이 없으므로 정부에서 직접 운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재정수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보통은 과세를 통해 상당부분을 충당하게 된다.
또한, 시장에서는 모든 소비자가 비슷한 정도의 돈을 갖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상품을 필요로 하는 정도와 그 상품에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비례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가난한 사람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경제체제는 궁극적으로 경제주체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효율성과 경제주체들의 복지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사치성 상품에 세금을 매겨서 거래량을 줄이고, 소득수준에 따라 누진세율을 적용해서 부자와 빈자가 갖는 지불능력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 또, 실업자 재교육이나 노인이나 장애인의 일자리 보전을 위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면 과세를 할 때 손실된 시장잉여를 더 적절한 다른 곳에서 창출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효율성을 해친다. (이것은 공기업 민영화 논의와 관련된 기업경영상의 효율성과 다르다.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말한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시장은 분배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므로 정부는 적절한 수준에서 효율성을 희생하여 복지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해법은 사례에 따라 아주 복잡하며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2002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