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선택해야 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한 지나간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런 만큼 어떤 선택이 좋을지 따져보는 데에는 누구나 신중하려 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는 어느 정도의 원칙이 있을 것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리저리 길을 달리 해서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목표를 수정하는 사람도 있다. 또 갈 곳을 정하지 못해서 헤매는 사람도 있고 목표설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개별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원칙들은 좀 더 포괄적인 층위에서 삶을 규정한다. 나는 이런 원칙들 중 몇 가지를 반성함으로써 각자의 본성이 원하는 삶의 양식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선택법을 찾으려고 한다.

선택에 있어서 최적해를 구하는 알고리즘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동적 프로그래밍Dynamic Programming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최적의 선택방법이 명확하게 뽑아져 나온다. 그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끼어드는 선택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방법은 적어도 현재 당면한 선택지를 모두 한 번씩 해볼 수 있고 다음 단계의 선택부터의 결과는 미리 알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며, 이전 단계의 선택에 의해 다음 선택이 영향받지 않아야 한다. 원하는 만큼 여러 번 다시 살아볼 수 없다면 이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동시에 부정되는 원칙은 무엇일까? 목표를 고정해 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으로 가겠다고 고집 부리는 것이다. 그가 정한 목표가 가장 좋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 지도 장담할 수 없다. 목표를 이룰 경우 다음 목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도 이 원칙으로부터 방향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세운 목표는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고사시키고 삶을 일방통행로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목표를 세울 경우 문제되는 것은 목표달성 보다는 목표설정 자체이다. 목표는 장기적일 수록, 확고할 수록 타당성이 떨어진다.

Greedy Algorithm은 단 한 번의 선택기회만 가질 경우 차선을 택하기 위해서 쓰인다. 선택지 중 가장 좋아보이는 선택만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으로, 일체의 목표설정을 부정하고 미시적인 선택을 신봉하는 반대의 극단이다. 이는 얼른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번의 선택에서 좋은 것을 택했지만 그로 인해 다음 단계의 선택에서 아주 불리해 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것 역시 좋지 못한 방법이다.

절대적 목표를 세울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가능한 한 멀리 내다봐야 한다.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경과를 예측하는 한편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앞에 놓이는 길은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고 언제나 앞서서 기다리는 것이며 각자의 본성을 비추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각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솔직할 것이다. 가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이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것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중용은 많은 경우 분명치 못한 입장을 취함이 아니라 양 극단이 공유하는 사고틀을 버림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목표설정의 유무가 아니다.


2001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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