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지성, 당신은 최근에 이 낱말을 발음하거나 써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머릿속에서 떠올려본 적은? 어쩌다 가끔 신문 같은데서 이름난 저술가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 잘못 사용하는 때를 빼놓고는 나도 그다지 자주 듣지는 못 하는 낱말이다. 가끔 쓰이는 데다, 쓰이게 되면 십중팔구 잘못 쓰이니 이 낱말의 정확한 뜻이 뭔지 상당히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사람을 대할 때면 자주 떠오르는 뭔가가 있는데,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지성이라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그런 것이다.

지성이란 어떤 지적 주체가 지식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때 지식을 단순히 전공서적에 씌여 있는 것들에 한정하지 않고, 경험적이고 선험적인 인식의 모든 것(심지어 미신이나 한가로울 때 하는 공상까지)이라고 한다면, 지성이란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예컨데, 입고 먹고 잠자는 동안에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사소한 차이를 가리키며 그 의미에 대해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마저도, 그것이 심오한 철학적 논변이든 '그냥'이라는 단답이든 간에, 나는 그걸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지성은 지식의 양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책 속에 고여서 발과 폐로 얻는 지식에 대해서는 천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해가 안 되면 당장 대학 강의실로 가 보시라. 반면 진정 빛나는 지성은 생각 밖의 곳에서 - 신해철의 방송에서,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만남에서, 아주 가끔은 정치인에게서도 - 마주치기도 한다.

어떤 지성이 빼어난 지성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단계에 오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지식으로서의) 세상을 대하면 될 것이고, 결론에 자신감만 갖고 있으면 되는 것도 같다. 언젠가 나에 대해서 좀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이 주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2001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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