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아주 적은 확률로 발생하는 극단적인 사건이 삶과 역사를 뒤흔들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 상식에 속하는 이 문제를 꽤나 긴 분량으로 풀어낸 책이 <블랙 스완>이다. 저자가 월스트리트 금융계에 종사한 이력이 있고, 심리학, 철학, 수학을 아우르는 어쩌고 하는 식의 책 표지 서평을 먼저 보고는 '겉똑똑이 한 명이 또 뻔한 얘기로 인기를 끌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내용에 대해서 호기심이 당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훑어보고 반납하겠다는 생각으로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서 빠른 속도로, 정말 빠른 속도로 넘겨 읽고 있었는데, 열 장이 넘어가고 서른 장이 넘어가면서, '어라, 잘 썼네?'하는 생각에 자세를 점차 고쳐 앉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일에 주목한다. 복권 당첨과 같은 확률적으로 예측 가능한 이벤트가 아닌, 베스트 셀러 등장이나 주가 폭락 같은 거의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 이 책이 다루는 대상이다. 이런 사건들은 정의상 예측 불가능하므로, 예측 기법과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극단적인 일이 잘 일어나는 분야(극단의 왕국)와 잘 일어나지 않는 분야(평범의 왕국)를 구분해서, 만약 극단의 왕국에 들어선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주문을 한다. 결론은 이처럼 간단명료하다.

그런데도 책이 이처럼 길어진 것은 저자의 이야기 풀이 능력 덕분이다. 저자는 자신의 당부를 사람들이 새겨듣지 않는다고 한다. 극단의 왕국에 들어서면서도 극단적 사건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것에 대해서, 논리적 오류를 집어내고, 그런 오류를 범하는 원인을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또 한편으로,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예측 가능성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분석 도구들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을 가하는 것에도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뻔한 내용'이라는 선입견이 책을 읽으면서 불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에 따라 독서가 얼마든지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는 이야기 만들기의 위력을 저자 자신이 이 책에서 누구보다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적인 자세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이 책의 결론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질문을 하나 해 보자.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만용을 부리지 않고, 극단의 왕국의 특성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하게 알고, 공허한 이론보다는 실천에서 배우는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한다면,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어떤 점에서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극단적 사건이란 정의상 대비할 수 없는데 말이다.

pocorall 님이 December 8, 2009 1:06 PM 에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