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


멋져보이려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가 되자' 체 게바라의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멋지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이 살아주는 인생들에게는 불가능한 꿈과 같아서 단지 쿨한 허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을 앞에 두고 더 진지하게 음미해 본다면, 이 말의 강렬함 내지는 숭고함에 전율할 것이다.

환멸의 재생산

미디어와 선생들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든다. 그러면서 실제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들은 무익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그럴듯한 꿈을 갖게 될 수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아이들이 꿈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해 그 꿈을 상당 부분 접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있다. 당장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받게 되는 성적과 학벌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너의 꿈은 불가능한 것이고, 현실에서의 성공은 이런 것이야"라고 어른들은 강요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꿈을 심어주자고, 나중엔 꿈을 빼앗자고 어른들이 하는 수작들은 설득력이 없고 유치하기 때문에 십대들은 섣불리 믿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럭저럭 상당수의 청년들은 매일 불가능한 꿈을 꾼다. 세상은 자신을 향해 열려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것은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결론 내릴 능력은 없지만, 능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는, 청춘에게만 주어지는 면죄부가 있기에 그들은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현실에 부딪히는 면적이 넓어지면, 자신이 처음 꾸었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준비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간다. 몇몇은 불가능한 꿈을 가능한 꿈으로 일찌감치 타합하기도 하고, 몇몇은 계속 저항하다가 막다른 길에 와서야 자신의 신념을 극단적으로 뒤집는다. 타협이나 전복이 이루어지는 나이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이르면 10대 중반에서 늦어도 서른 즈음에는 야무진 꿈을 꾸기에는 현실이 권태롭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라나는 십대들에게 일찌감치 현실에 투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넘어선 강요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는 누구인가

서른이 되도록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운이 아주 좋아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려버리는 정주영 같은 사람이거나,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서 현실감각이 고장난 사람이거나, 게바라가 말한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이다. (다음부터는 '불꿈리'라 하겠다.)
타협이나 전복을 택한 사람들은 리얼리스트이다. 운 좋은 사람이나 정신장애인은 불가능한 꿈을 안고 산다. 그런 면에서 '불꿈리'는 양면성을 가진 특별한 부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말은 주례사마냥 좋은 말만 형식적으로 모아놓은 것이라고 오해받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꿈리'가 되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적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특정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도 아니고,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허풍도 아니다. 단지 삶을 대하는 특정한 태도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꿈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게바라는 '원대한 꿈'이라던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니라 '불가능한 꿈'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는 꿈꾸는 대상의 커다란 스케일과, 현실에 몸담은 자신의 겸손함이 교차된다. 현실 앞에 상상력마저 굽히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꿈과 현실을 모순적인 관계로 보지 않는다. 이들이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환멸을 가져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냉철한 현실감각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신속하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구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지속 가능한 개발'모델과 비슷한 '지속 가능한 꿈꾸기'전략인 것이다.

불가능한 꿈을 꾸자

현실에 복종하는 삶이 말하는 성공이란 편하게 먹고자고싸는 것이 보장되는 삶인듯 하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 다음엔 어디에서 인생의 보람을 찾을 것인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결국 사람은 순수하게 현실의 요구에 복종하면서 살 수는 없다. 크던 작던 누구나 낭만적인 꿈을 갖고 살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고,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불가능한 꿈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점차 수렴해 가는 수열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겨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자. 오히려 불가능한 것은 출세와 안위에 인생을 맡기려는 것이다.


2004년 8월 1일

pocorall 님이 August 1, 2004 11:24 PM 에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