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시험이 끝났다. 그간 공부한 것이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있으며 얼마나 내 삶에 도움이 될 지는 차차 묻기로 하자. 시험은 그 자체로 일종의 도전이며 게임이다. 약간 자학적인 취미로 단지 이것을 즐겼다고 해 두자. 잠을 줄여가며 눈이 빠져라 공부하고 다음 날 열 시간을 자고 낮동안 시체놀이를 하면 효율성이란 점에서는 이득이 없을지는 몰라도 이틀간 적당히 공부하는 것보다 확실히 하나의 사건은 된다. 지금은 그 떠들썩한 행사를 치루고 집에 가는 전철 안이다.
전역한 동기들은 덜커덕 불안증이 생기는지 기회만 있으면 어느 회사가 연봉이 세더라, 아니다 공무원이 팔자가 늘어지더라 하고 쑥덕거리는 데에 버릇을 들인다. 얘들아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미소지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덩달아 불안해지는 것은 나도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겠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정말일까, 내 또래에 이 가사를 쓰고 십수 년을 더 산 사람은 지금 어느 곳에 서 있을까.
겁 먹지 말자. 조바심 내지 말자. 노력을 들여야만 얻어지는 것은 나를 배신하지 않음을 믿자. 내가 나임을 즐길 수 있고,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음을 자랑스러워 하자.
2003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