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17에 덧붙이는 글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어느 예술 분야의 작법을 공부하더라도 초보자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규칙을 배운다. 나쁜 작품과 좋은 작품을 구분하는 기준은 상세하게 분석되어 있고, 좋은 작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충실하게 따를 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불린다. 작법을 배우는 사람은 때때로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의아해한다. 좋은 것을 알아챌 줄 모르는 자신의 미감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 규칙에 예외가 있는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 규칙이란 수학처럼 논증되거나 자연과학처럼 실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조건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미감에 새로운 대상들을 비춰주고 자신의 반응을 관찰해야 한다. 자주 만나본 쌍둥이는 구분하기 쉬운 것처럼 접하는 대상들에게서 세밀한 차이를 알아채려고 노력하면 저절로 좋고 좋지 못함을 판단하게 된다. 이 판단들에 대한 서술은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다. 과학법칙이 자연에 절대적으로 종속적이듯이 좋은 작품을 구분하는 이론도 감상자의 마음에 절대적으로 종속적이다. 초보자가 기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을 가속하기 위한 촉매이다. 공통감sens commun의 산물인 전통 기법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발견과정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미감을 발견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2003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