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법 2
돈이 뭘까? 글쎄, 생각하기도 귀찮은 물건이다. 나의 희망은 그저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를 함축한다. 큰 돈을 벌어봤자 그것을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것과,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돈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기표화된 권력의 전형적인 예이며, 소유물의 교환가치가 저장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누차 밝혔듯, 내게는 기표보다 기의가 소중하고, 소유물을 확보하는 것보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기쁨이 된다. 주식 등락에 일희일비 하거나, 돈 될 만한 사업계획을 짜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로 요만큼도 없다.
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돈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처지에 따라서 고정적인 지출이 있기 마련인데, 그만큼의 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제로 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마저도 나는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무급이라도 기꺼이 할 만한 일과 가능한 한 비슷한 일을 하고, 써야 하는 돈을 가능한 한 적게 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무엇보다 돈에 대한 가치평가나 용처用處에 대한 계획 없이 일단 벌고 보자는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계획 없이 번 돈은 계획 없이 쓰게 마련이고, 그러면 또 금방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저 끊임없이 노동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소비하는데 쓰는 돈과, 그 돈을 버는데 든 내 노력을 비교하는 것을 첫번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물건이 얼마나 싼지,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우선해서, 그만한 돈을 벌기가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노동과 교환하기에는 벅찬 물건이라고 생각되면, 안 벌고 안 쓴 다음에 그로 인해 남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소비와 돈벌이에 있어 귀차니즘은 미덕이다.
2003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