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방을 닫으며...
이것은 한 달 전, 할 일은 엄청 쌓였는데 쉬지를 못해서 반쯤 맛탱이가 가버린 밤에, 일은 안 하고 밤을 새서 물색하고 설치한 게시판이다. 여기에는 하루동안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매일매일 가볍게 스케치할 요량이었다. 읽기 게시판은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거나 내 삶 속에서 비교적 큰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올렸으니 게시수도 적었다. 그래서 여기에 글을 쓰는 건, 글을 쓰는 연습이기도 하고, 나중에 되돌아보기 위한 삶의 짧은 기록이기도 하고, 여기에 찾아와서 새 내용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이기도 했다. ^^ 이런저런 목적들을 밝혀서 첫 글로 올리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고, 그게 한 달을 갔다. ^^
선언 없이, 흐리멍텅한 계획으로 진행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많은 장점이 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소득을 얻어서 그쪽으로 부담없이 목표를 선회할 수 있고, 원래 달성하려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힘든 데다가,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고심해서 만든 문장이 나중에 읽고 보면 별로라는 것도 알았고, 이런 짧은 글로는 아주 평범한 하루 일상조차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제대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쩌면 하루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그런대로 꾸준히 글을 써온 것에 만족하고, 이제 한 달간의 실험을 마치려고 한다. 내가 글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짙은 농도를 지닌 글을 매일 쓸 수는 없고, 이곳이 동사무소 일지도 아닌 다음에야, 별 것 아닌 일상을 매일매일 끝없이 기록에 남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사소한 일상조차 제대로 써내자면 한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언어에서 약간 비껴나고 싶다.
아마 다음에 어떤 이벤트를 하고싶어 지거나, 괜히 변덕이 생겨서 하루 일과를 늘어놓고 싶을 때, 다시 글을 쓰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때도 별다른 설명 없이 무작정 출발하더라도, '자식...심심하구나'라고 생각하고 가끔씩 들여다봐줬으면 좋겠다.
2002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