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바람직한 지도자상
지도자는 어떤 무리를 목적하는 방향으로 가르쳐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 무리가 기업이면 지도자는 경영자일테고, 국가이면 정치인에 해당되는 자리이다. 무리를 이끄는 능력에 있어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귀감이 될 만한 덕목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이제와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보편적인 규범에 대해 더 언급한다는 것은 내 능력으로는 무척 힘든 일이 될 것이고, 성과도 좋지 못할 듯 하다. 대신에, 좀 더 유용한 전망을 얻기 위해 앞으로 달라져야 할 지도자의 모습에 대해서 간단히 짚어보려고 한다. 21세기는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시대이며 이 시대에 맞는 지도자는 어떤 것일까? 아니면, 21세기가 어떤 시대가 되어야 하며, 그 시대를 앞당길 지도자는 어떤 인물일까?
전근대 사회에서의 지도자라는 위치는 권력관계의 불균형에 의해 자생한 것이다. 어떤 계급이 전체 집단에서 유리한 위치를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전근대의 지도자였다. 이 때 권력은 초월적인 것이나 권위로부터 정당성을 뒷받침받고, 비민주적,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유지된다. 지도자는 무리에 대해 우월하며 글자 그대로 ‘손가락으로 가리켜 안내’指導할 자격을 갖춘 인물로 여겨진다. 귀족, 가부장, 남성, 성직자 등이 이런 류에 해당한다.
근대화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지도자는 입헌제, 대의제, 권력분립제 등을 배경으로 집단의 필요에 의한 계약으로 권한을 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지도자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어 집단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집단을 위해 봉사할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는 자이다. 지도자는 이제 무리보다 우월해서라기보다는 평등한 출신으로서, 대리인의 성격을 띤다. 민주정치가 발달한 국가에서의 정치가, 전문경영인, 여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집단의 대표들이 이에 속한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모범적인 근대 지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정치는 아직도 독재시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고, 소유주의 무리한 경영으로 시장질서가 흔들리기가 다반사다. 혈연, 학연을 타고 흐르는 출세경로는 아직도 유능하고 꿈 많은 젊은이들을 좌절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적 지도자의 한계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시기상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부분적으로는 근대의 처방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을 원하고 있으며, 근대와 탈근대를 함께 다루는 창조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근대적인 지도자 선출 방식은 무리가 항상 단일한 목적에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효과적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집단 내부의 이해관계는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평행선을 그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선거는 투쟁의 장이 되고, 권력 쟁취에 성공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착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영남이 호남을, 호남이 영남을, 수도권이 지방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도자를 가진 쪽이 모든 것을 가지는, 그래서 서로 이 자리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리 안의 다양성을 통합하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정 계급에 결정권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도자는 가능한 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적게 가져야 한다. 대신 지도자는 경기의 심판이나, 토론 진행자와 같은 역할을 맡아서, 집단 내부의 다양한 주장들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의견조정을 이끌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지도자는 무리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권한을 대리 행사하지도 않으며, 단지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투명한 촉매가 된다.
이런 지도자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상대의 의견을 들을 줄 모르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데에도 무척 서툴다. 어디에서도 배우질 못했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렇더라도, 공으로 흐르는 시간이 무언가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서로에게 관용을 갖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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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개론 리포트지렁~~~
2002년 6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