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기록
나에게 열정은 너무 일찍 소진되었다. 곧 길거리에 나앉아 의미를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다들 바삐 흘러갈 뿐. 나는 묵은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다. 사람들은 내 꼴을 보고 혀를 찼다. 난들 어쩔 수가 없었다. 한때는 그대 입가에 붙은 밥풀마저 아쉬웠으나, 멋적게 웃고 말았다. 눈에 띄게 야위어가자,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체같은 녀석들. 멀뚱히 쳐다보며 쓴웃음 짓는 버릇이 늘었다. 어린왕자의 장미가 놓여진 근사한 식탁을 꿈꾸고 싶지만, 실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생각조차 쉽지가 않다. 내 목숨을 잇는 것은 몇 방울의 이슬과 초코 다이제스티브. 세상은 나를 굶긴다. 살고 싶으면 저들처럼 바삐 뛰어다녀야 한다. 쫄쫄 굶어서 피골이 상접한 채로.
2002년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