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우연, 감각
예술가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뒤샹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명한 것을 잊고 지내는 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역할만을 했을 뿐. 문학작가는 단어를 선택해서 나열하고, 음악가는 음표를 선택해서 나열한다. 그 선택의 과정에 작가의 정신이 반영되는 것이다. 그림을 본다거나 음악을 들을 때, 디지털 매체로는 저장되지 않는, 라이브에서만 전해지는 무언가를 통해 작가의 예술혼 같은 것을 체험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코드화되고 숫자로 환원될 수 있는 정보들을 구성하는 도중에 작가의 보이지 않는 도장이 찍혀지는 건 확실해 보인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아마도 독특한 형태의 패턴이 구성되는 것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지각하는 과정이리라.
작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부분중 자연이 선택해준 부분은 우연이라고 한다. 우연은 단지 자연이 제시하는 법칙들 중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패턴에 해당한다. (자연이 어떤 선택을 할 줄 알고 있다면 그건 인간의 계산 속에 편입된다. 장기에서 상대방의 수를 내다보는 것처럼.) 우연을 통해서는 자연도 작가도 알아볼 수 없다. 우연을 강조하는 작품은 잔뜩 노이즈가 낀 TV화면과 같다. 노이즈를 걷어낸다고 해서 별다른 볼만한 화면이 나오는 것도 아닌 화면 말이다.
그런데,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예술작품이 관념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문학은 확실히 그뿐이다. 감각이 아닌 순수한 관념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그게 전부일까? '그림의 떡'이라는 표현에서 식욕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뜻은 접어두고, 미학적인 면에서만 고려할 때에도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빨갛고 노란 색면들을 직접 보는 것과 그것을 코드화한 숫자들을 받아들여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지 않을까? 두 경우에 작가의 위치는 어떻게 달라질까? 답하기는 쉽지 않다.
2002년 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