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음악

바흐 음악은 비인칭적이다. 작곡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 분'의 목소리를 대리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마치 허블 우주망원경에서 전송되어 오는 영상과 같이, 우주의 심연에서 오는 듯한 음악을 선사한다. 바흐 음악에 있어서 음악적 감동은 쉽게 알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한편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실내악은 귀족적 품위를 위한 음악이다. 음악의 주인공은 청자이며, 음악은 연회의 분위기에 성실히 봉사한다. 귀족 음악의 감동이란, 고급 레스토랑에서 흠잡을 데 없는 요리와 흐트러짐 없는 깔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의 만족감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베토벤에 이르러 음악의 주인공이 작곡자가 되었다. 작곡자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음악적 자존심을 걸고 대중 앞에 선포한다. 대중은 예술가의 세계에 초청받음으로써 그에 압도된다. 음악에서 개인적인 정서가 탄생한 것이다.

낭만 시대에 발견된 음악에서의 개인은 대중음악의 시대에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노래들이 서정시와 같이 개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며, 사람들은 노랫말 속의 화자에 쉽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영상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새로운 양상이 등장한다. 아이돌 음악, 곧 여러 명의 가수가 군무를 추며 부르는 노래가 그것이다. 비주얼에서부터 노랫말까지, 아이돌 음악은 감정이입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대상이다. 소원을 말해보라고 유혹하는 아이돌의 몸짓을 보며, 시청자들은 프로이트적인 환상 속에 취한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성찰, 혹은 음악적 위안은 마우스가 사고하는 인터넷 영상의 시대엔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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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May 17, 2010 10:0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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