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에서 '책, 지성'섹션이 나오는 금요일은 은근히 기다려지는 날이다. 박재동 아저씨의 마음 따뜻해지는 서화와 기술속 사상에 대한 연재, 고전과 최신 서적에 대한 서평들이 긴 출근시간을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중에 '아깝다 이 책'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한날은 눈에 띄는 서평이 있어서 그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그리고 이내 '아깝다 이 책'이라는 코너 이름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좋은 책을 발굴했다는 기쁨과 함께.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禪>은 선종禪宗의 방식으로 매트릭스와 사이버펑크 문화를 해석한 책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문화적 현상을 이용한 선 입문서이다. 선의 세계관과 컴퓨터 네트웍으로 연결된 세상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개인들은 사고하고 결정하는 주체라기 보다는 그물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비추는 연결망의 노드들이다. 미니홈피의 상호링크와 대체로 퍼온글로 이루어진 블로그(퍼온글이 아니라면 사진들인데, 사진들도 현실의 이미지를 퍼온 것이다)들은 선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을 쏙빼닮았다. 사람들은 네트웍상의 공간이 가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상을 단지 허깨비라고만 여기지는 않는다. 메신저 대화로 무슨 약속을 했으면 그대로 효력이 있는 것이지, 실제로 만나서 다시 약속해야 제대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가상세계는 흔히 현실이라고 불리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지만, 나름대로의 생생함을 갖고 유효한 세계로서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에 다른 급수를 메길 필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세상은 허공에 핀 꽃'이라는 선의 가르침을 전파할 절호의 기회처럼 보인다. 감각세계의 확실성을 회의하는 것은 이전에는 데카르트와 같은 선지자의 몫이었지만, 사이버펑크 문화의 일면이 광범위하게 퍼진 지금에 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과연 설득력 있다. 허깨비, 가짜 등이라고 표현했으면 공연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는데, 허공에 핀 꽃이라니, 비유도 멋지지 않은가.
세상이 허공에 핀 꽃임을 깨닫고 세상 속에서 붙들고 있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선의 수행이다. 이 수행이 완성되면 열반에 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갖고 태어나서 어떻게 세상 일에 완벽히 초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부처가 죽음에 이른 것을 특별히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모양이다. 살아서는 달성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래도 그것에 가까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노력은 하자는 것이 선이다.
유교나 기독교가 권력자의 이데올로기와 야합하는 경향에 대한 혐의를 벗어버리기 힘들다면, 선은 패러독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지닌다. 우리가 무슨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통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선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언어를 뛰어넘어야 한다. 선을 전하기 위해서 설법은 하지만 설법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곳은 언어를 초월한 곳이라니, 그래서 불국사에 있는 설법을 하는 강당 이름은 '말이 없는 집無說殿'이다. 선의 공부방식은 논리정연한 논증으로서가 아니라, 순발력(機라고 한다)과 극적 반전(轉語라고 한다)으로 무장한 대화로 이루어진다. 개그의 필수 요소를 언급한 것 같은 이 점 때문에 선문답은 곱씹어 읽으면 번뜩이는 재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문답은 수행의 깊이가 쌓일 수록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띄는데, 많은 전문분야가 그렇듯이 선문답도 급수가 올라갈수록 초보자에게는 알 수 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매우 야만적이게도, 선문답이란 말을 추상적이면서 얼토당토 않은 대화를 비꼬는 데에 갖다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은 허공의 꽃이라는것을 알라니,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다들 산으로 들어가자는 것일까? 책에서는 매트릭스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트릭스 안의 권력에 집착하는 사이퍼를 인용하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내 방식대로 좀 더 적절하게 다시 해석하자면, 우리는 어차피 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이상(해탈해야, 죽어야 벗어난다), 꿈을 꿈답게 멋지게 꾸어봐야 하지 않을까. 알량한 돈 몇 푼과,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차지할 권력 따위에 아웅다웅하는 것은 구차하다. 훌륭한 연주자가 좋은 악기를 만나 음악을 통해 자유로워지듯이, 우리는 이 세상을 만나 삶을 통해 자유로워져야 한다.
책에서는 매트릭스의 여러 장면들을 인용하면서 해석의 게임을 펼치고, 사이버펑크 문화를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책의 분량은 270쪽 정도로 적은 분량이니 이거야 말로 일석삼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매트릭스를 다시 보고싶어질 것이고, 사이버펑크의 소설이나 문화를 좀 더 접하게 되고 싶어지고, 선에 대한 호기심도 늘어날 것이다.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매트릭스 3의 흥행 실패와 함께 묻혀버렸다는 점은 매우 '아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