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사상도 종교도 아닌, 기술이라고 믿습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단순히 일이 빨라지고 쉬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용도가 개발되고, 그로 인해 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갑니다. PC, 인터넷, 핸드폰, 휴대용 플레이어는 전기와 철도가 그랬듯이 돌이킬 수 없이 우리를 길들였습니다. IT가 세상을 바꿔 가는 시기에, 세상을 바꾸는 그 힘을 일러주는 공부를 하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같은 과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미묘한 무기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전자 분야에 비해 소프트웨어 분야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 저변에 깔려있는듯 합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IT대기업들은 MS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드웨어 업체입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나올 때보다 새로운 하드웨어가 등장할 때 사람들은 더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집니다. 또, 큰 이익을 내고 많은 연봉을 약속하는 회사들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전자 회사이기 때문에, 자기 노동력 말고는 팔 것이 없는 노동계급 대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전공은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릇에 관한 열광은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는 컨텐츠를 담는 그릇이고,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그릇입니다. 온갖 전자제품과 새로운 미디어들이 가득 개발되면, 그 그릇에 담긴 내용들이 심심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대형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보다 새로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관심을 끌듯이, 새로운 대용량 메모리가 개발되었다는 뉴스보다는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어떤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토론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자보다는 후자를 개발하는 것이 두말할 것도 없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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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January 30, 2006 12:5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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