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우리 고향은 저 별들.. 떠나온 건 언제였나
(초록빛 달과 붉은 대지와 마음속의 낙원, 그 낙원속의 나)
달은 휘영하고 포도주는 향기롭구나
어제도 내일도 없이 영원한 지금일 뿐
아아 우리 고향은 저 별들.. 떠나온 건 언제였나
아아 엄마처럼 미소짓네.. 수천 년 같은 얼굴로
상쾌한 밤공기에 몸이 녹아드는구나
우리는 영혼만 남아 밤새워 춤을 추누나
아아 우리 고향은 저 별들.. 떠나온 건 언제였나
아아 엄마처럼 미소짓네.. 수천 년 같은 얼굴로
아아 우리가 떠나온 도시.. 얼음모래가 내리던..
말해줘 말해줘 더이상 슬프지 않다고
노래해줘 노래해줘 우리는 하나라고
아아 우리 고향은 저 별들.. 떠나온 건 언제였나
아아 엄마처럼 미소짓네.. 수천 년 같은 얼굴로
아아 우리가 떠나온 도시.. 얼음모래가 내리던
아아 짙은 회색 하늘아래 모두가 노래를 잊었지
아아 우리 고향은 저 별들.. 떠나온 건 언제였나
아아 엄마처럼 웃어주네.. 수천 년 같은 얼굴로
(초록빛 달과 붉은 대지와 내눈 속의 그대, 그대 노래 속의 나
금빛 은하수와 은빛 공기와 마음속의 낙원, 그 낙원 속의 나)
----------------------------------------------------------
스스로 보헤미안으로 불리기를 원하던 이상은. 그의 긴 여행의 궤적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절대적인 것을 향한 열망이 베어 있다. "수천 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 별들은 새로운 영토라기보다는, 돌아가야 할 "우리 고향"으로 그려진다. 그 곳은 "영원한 지금"뿐인 시간을 초월한 곳이고, 우리는 춤을 추되 "영혼만 남아" 춘다. 전형적인 관념론을 환기하는 가사이다.
'방랑자'라는 관념은 몇 가지 표상들을 품고 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동적이고 탈영토적인 성격이 한 부류이고, 일상과 벗어난 삶을 누린다는 초현실적 속성이 다른 한 부류이다. 이상은이 스스로 말하는 '방랑자'는 앞의 것이라기 보다는 뒤의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비체험>이라는 앨범 제목은 그래서 아주 적절하다.
시詩가 너무 무거운 관념을 품고 있으면 졸립기 십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논문이 아니면 구호가 돼 버릴 위험이 있다. 그의 옛 노래들은 섬세한 사상을 밝힌 반면에 흥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열한 번째 앨범을 낸 "중견가수"이상은에게, 세월은 "짙은 회색 하늘 아래"에서 잃어버린 뮈토스를 찾아 주었다. <공무도하가>앨범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사람이 되어 주오"라고 적극적으로 호소하면서 건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었지만, 이제는 절실한 소망에도 흥을 돋궈, 감탄사를 넣어 가며 타령을 불러내는 연륜을 보인다. 더 이상 노래가 관념을 꾸며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관념이 체화된 결과로서 노래가 표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겹쳐지는 노랫말이 화성을 이루는 다채로운 분위기는 글만 적어놓은 밋밋한 종잇장으로는 결코 엿볼 수 없다.
가장 포근한 고향을 그리며 떠나온 그의 여정, 그 언저리에 남겨진 음악들이 성숙해 가는 모습을 당대에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다.
2003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