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와 <오리엔탈리즘>

12월 9일에 작성한 기말 리포트
분량을 불리기 위해 미리 써 뒀던 총, 균, 쇠를 울궈먹었다. --
<오리엔탈리즘>은 사실 반도 제대로 안 읽었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는 상태여서 푸코 얘기로 잔뜩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
쓰는 동안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일단 썼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푸코를 나름대로 이해하느라 애를 썼기 때문에 일단 올리고 본다.

한국근대민족운동사
문명의 격차에 대한 두 가지 분석:
<총, 균, 쇠>와 <오리엔탈리즘>

컴퓨터학과
99200087
이성호

근세 유럽으로부터 발생한 민족이라는 단위는 18, 19세기를 거치면서 공고화되고, 제국의 시대를 계기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발생하게 된 중요한 요인들은 흔히 자본주의, 근대적 산업발달, 부르주아 민주주의 등을 들곤 한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요인들을 포괄하고 그것에 앞서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물질적/사상적인 면에서의 이런 근대적 변화는 왜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유럽 밖의 세상에 이 변화를 강요했는가? 이 두 가지 의문은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으로 점철된 근대 이후의 세계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으로 유효하며, 끊이지 않는 민족적/종교적 갈등을 완화할 대안을 모색하는 데 단서가 되는 것으로 중요하다. 여기서는 각 의문들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제시한 두 책을 소개하고 어떤 면에서 서로가 보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지 논의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으로써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꼽았고, 두 번째 의문에 대한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꼽았다.

근대 문명은 왜 유럽에서 발달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가깝게는 중세 이후의 동서양 역사를 비교하여 얻어질 수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문명은 황제 중심의 강력하게 통합된 질서를 안정되게 유지해온 반면 유럽은 종교적 권위가 의심받은 이후 병렬적인 국가들의 혼란상 속에서 사회경제적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유럽과의 비교대상을 중국으로 삼았을 경우인데, 그 이외의 지역에서 유럽에 앞설 만한 문명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살고 있었고 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의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수난을 받았다. 유럽이 근대화를 꽃피울 때 아프리카의 주민들은 왜 그만한 문명을 발달시키지 못했을까? 또 아메리카는? 오세아니아는?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된 근동의 주민들은?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역사 이전의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이 언제부터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지, 그 중에 특정 지역에 정착한 주민들만 선별적으로 문명을 발달시키게 된 요인은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유럽과 아시아가 다른 대륙에 앞선 문명을 발달시키게 된 현상을 설명한다.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인류학, 언어학 등의 광범위한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동원하는데, 그 폭넓은 지적 오지랖과 적절한 논리 전개에 따른 치밀함이 놀랍기도 하거니와, 인문학적 접근이 되기 쉬운 질문에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논의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이채롭다.

문명의 격차를 설명하는 관점 중에 서양 문명의 세계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흔히 동원되는 것이 인종주의 적 관점이다. 유럽인이 선천적으로 뛰어나서 세계를 정복할 문명을 갖게 되었고, 아시아인은 그보다 하등한 종족이어서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아메리카 인은 더 하등해서 자신의 땅에서 몰려났다는 요지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종주의 적 시각의 완전한 반대 지점에서 치밀한 답변을 내놓는다. 저자는 초기 인류의 이동, 작물, 가축, 기후, 지형, 세균, 문자, 권력구조 등의 상세한 분야의 자료를 토대로 유사 이전에 예고된 문명의 불균형을 설명해낸다. 그에 따르면 인종간의 선천적인 능력 차는 무시할 만한 것이며, 놀라운 문명의 격차는 지리적 환경에 의한다는 것이다.

얼른 눈에 보이는 차이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16세기에 백 수십 명의 스페인 군대가 수백만의 잉카제국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 일이 있다. 1:10000.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스페인 인의 능력이 만 배로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다.(그래서 스페인 군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렸다.) 그들은 총과, 면역성을 갖지 못한 세균과, 문자를 가진 문명으로부터 배운 전략을 갖고 있었다. 반면 잉카 인들은 가죽 방패와 석기를 들고 있었으므로, 스페인 군은 쉽게 잉카의 황제를 생포할 수 있었다. 순진한 잉카 인들은 금덩이를 바치면 황제를 풀어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배반의 역사에 닳고닳은 스페인 군에 의해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잉카문명은 왜 그때까지 석기시대였을까? 잉카 인은 왜 유럽인이 가져온 질병에 목숨을 잃고, 그 반대는 되지 않았을까? 잉카 인은 왜 문자를 갖지 못했을까?

문명은 정착생활로부터 시작한다. 수렵 민의 이삿짐은 필연적으로 단촐 해야 했으므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발명품을 만들 수가 없다. 그리고 광장이나 성역, 관청과 같은 공공장소도 발달시킬 수 없으므로 문명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착을 해야 한다. 북아메리카 서안과 같은 먹을 것이 아주 풍부한 곳에 정착한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정착 민이 수렵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정착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경작을 겸해야만 하고, 인구밀도가 늘어날수록 경작비율과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 농업 생산성 향상이 인구밀도를 높이고, 높은 인구밀도가 생산성 향상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순환고리 속에서 초기 문명이 발생한다.

농작물이 어느 정도의 지식만으로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농사를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문명이 낙후된 민족은 지능이 모자란 탓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렵 민들은 그들 주변의 동식물의 특성과 용도에 대해 어느 식물학자보다도 상세히 알고 있으며 최대한으로 그것을 활용할 줄 안다. 문제는 작물 화에 용이한 식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몇 안 되는 작물 화에 용이한 야생식물들마저 지중해 연안에 편중돼 있었다. 농작물 분포의 확산 지도를 그려보면 지중해 연안에서 출발해 유럽 전역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업 화는 자생 식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작물에 적합한 외래종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 문명의 차이는 다른 요인에 의해 더 벌어진다. 동서 방향으로 뻗은 유라시아 대륙에 비해 남북 방향으로 뻗은 아메리카 대륙은 어렵게 얻은 작물과 정착문명이 전파되는데 더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 농작물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남북 방향보다는 동서 방향의 기후가 대체로 유사하므로 동서 방향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잉카 문명의 경우에는 고산지대에 있었으므로 기후학적인 섬에 해당되어 작물이 외부로 빠져나갈 경로가 없었다.

세균도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유럽에서 건너간 페스트나 결핵 등에 전혀 면역을 갖지 않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몰살에 가까운 사망률을 보인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을 공포에 떨게 할 세균을 갖지 못했을까? 보통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은 가축으로부터 옮아온다. 인간에게 발병하는 세균이 가축에 있던 세균과 동일한 것은 아니고, 가축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인간에게도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가축과의 오랜 생활 속에서 가축이 보유한 세균이 변이를 일으켜서 인간에게 위험한 형태로 전염된다고 한다. 유라시아 인들은 오래 전부터 가축을 길들여왔지만 아메리카 인들에게는 가축이 없었다는 점이 그들이 세균전에 밀린 요인이다.

아메리카 인들에게 가축이 없었다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와 연관 있다. B.C. 12000년에서 B.C. 10000년 사이에 인류가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왔다. 이것은 수백만~수만 년 전에 이주가 완료된 유라시아 대륙보다 훨씬 늦은 것으로, 이미 도구를 다루는 상당한 기술을 익힌 상태에서 건너갔을 것이다. 가축화에 적절한 대형동물들은 사냥에도 적절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기술을 가진 상태에서 처음 이들 동물을 처음 만난 인류는 이들을 모두 식량으로 쓰고 멸종시켰을 것이다.

이 사실은 유럽인들이 폴리네시아나 아프리카 중부 지방에 대규모 정착촌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게 해 준다.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인들은 가축을 키우지 않아서 유럽인에게 전염시킬 치명적인 질병이 없었다. 하지만 폴리네시아나 아프리카 중부의 경우 인간에게 옮을 수 있는 수많은 질병이 있었는데, 유럽인들은 그에 대한 항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원주민을 몰아내고 대규모 이주를 실현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문자의 발생원인, 사회 구조와 발명의 필요성, 필요 없어진 기술의 도태 등 여러 가지 문명 불균형 요인에 대한 치밀한 탐구가 이어진다. 지리적으로도 유럽과 잉카 문명의 비교뿐 만 아니라, 폴리네시아에서의 문화적 다양성, 아프리카에서의 인종 분포 변화, 테즈메이니아 인이 낙후된 문명을 가진 이유, 마다가스카르 섬의 인류학적 특이성 등, 다양한 영역에 시선을 던진다. 구미를 당기는 저자의 서술방식도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은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져두고 차분하게 근본 원인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서술방식은 호기심 많은 독자에게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xxx일 수도 있는데 왜 ooo일까?" 라는 질문도 수시로 던지는데, 논리적 비약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아주 성실한 학자적 태도도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천혜의 자연조건 속에서 문명을 발달시킨 유럽은 17세기를 맞으면서 시선을 유럽 대륙 밖으로 돌렸다. 그들은 새로이 맞닥뜨린 이 세계를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앞선 문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을 억압하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총, 균, 쇠>가 문자 이전 시대의 물질적 세계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오리엔탈리즘>은 문자 이후 시대의 언어적 세계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에 들어간다. 언어적 세계 안에서 서양은 동양을 어떻게 바라보았나 하는 질문은 철학에서 인식론의 문제로 연결된다. 저자가 누차 밝혔듯, 이 책의 방법론은 푸코의 언표 이론과 지식-권력에 대한 이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는데, 부정확한 지식으로 대강을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1)


인식론에서는 주체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를 다룬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이 대상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종래의 인식론을 뒤집어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그것을 규정하는 어떠한 틀이 있음을 제시하고, 그 틀을 초험적인 범주로 규정해서 그 범주표를 제시했다. 다시 말하면 대상의 인식은 주체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편 푸코는 주체와 세계의 관계 속에서 언어가 매개를 함을 주목하고 언어의 질서에 세계와 주체가 모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푸코가 생각하는 인식 가능성의 틀은 칸트가 말한 경험 이전의 보편적인 범주가 아니라 바로 담론의 질서이다.

담론(discurs)2)은 방법적 질서에 따라 제시된 판단들의 체계3)로서, 넓게는 일상적인 담화활동에서부터, 지식으로서 체계를 갖춘 언설들, 엄밀성을 띤 과학적 명제들까지를 포괄한다. 담론을 이루는 것은 명제나 어구들인데, 명제나 어구는 언표적 장 속에 존재하는 여러 언표의 계열들 중 특정한 것이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언표는 명제가 어떤 의미를 부여받기 이전의 것으로, 언표적 장은 기표와 기의의 특정한 연결상태가 아닌 기표가 기의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의 집합이다. 이 공간 안에서 담론의 질서가 펼쳐지고, 사물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장갑차 사고를 낸 미군은 무죄”라는 명제는 많은 한국인이 틀린 명제로 판단하겠지만, 한국인의 언표적 장 속에 존재하는 언표중 하나이다. 그러나 “거북이가 우산을 입고서 민주주의를 먹는다.”는 문장은 알 수 없는 낱말을 사용하지도,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지도 않지만 의미를 연결시킬 재주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담론의 질서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세계는 인식할 수 없고 따라서 명제의 수준에서 판단을 내리거나 담화의 수준에서 발화할 수 없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낮선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서 그들 담론의 질서를 재구성하고 확장할 필요를 느꼈다. 동양에 관한 이미지를 모으고, 문헌을 정리하고, 탐험하고, 언어를 연구하고, 생활상을 조사해서 동양을 표상 하는 담론(오리엔탈리즘)을 구축해낸 것이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은 오리엔탈리즘 속의 동양이다. 그것이 동양인이 바라보는 그들 자신의 모습과 같은지 다른 지의 여부가 이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일치할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서양은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바라본다.

푸코는 지식-권력이란 개념으로 진리임을 공인 받은 지식(과학, 제도권의 주류 학문, 예절)이나, 국가권력 등의 권력의 구체적 형태를 지식-권력의 한 양태로 파악한다.4) 푸코에게 권력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효과이다. 지식은 순수하게 옳거나 그르지 않다. 지식에 진위의 구분을 내리는 것은 권력이 담론을 통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앞서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미군은 한국에서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군과 한국 민중과의 관계에서 권력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고 “장갑차 사고를 낸 미군은 무죄”라는 지식이 참인가 거짓인가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설정(권력)에 따라서 결정된다.

마찬가지의 논의가 <오리엔탈리즘>에도 바탕이 된다. 서양은 동양에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멋대로 구성한 지식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자체적인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 텍스트들을 양산했고, 이것으로부터 동양을 ‘창조했다’. 문헌학, 언어학, 지리학, 해부학 등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이 동원되어 동양을 연구했고, 그 연구성과는 다시 동양에 대해 말하는 다른 연구의 기초자료로서 작용했다. 오리엔탈리즘은 그렇게 자기증식을 하며 우월한 서양의 대립 쌍인 열등한 동양의 상을 만들어갔다. 동양은 실제 거주민의 삶과는 상관없이 기괴하고, 선정적이고, 낭만적인 곳이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리엔탈리즘>이 저자가 빚을 졌다고 고백한 푸코의 사상에 얼마나 충실한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감시와 처벌>에서는 권력을 국가기관이 가진 행정력으로서의 권력이라기보다는 국가가 미치지 않는 미시적인 영역에서 신체에 작용하는 힘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19세기가 오면서 수형자의 처벌방식이 관대하고 박애 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더 미세하게 수형자를 통제해 오는 권력의 움직임을 읽어낸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에 사용된 ‘권력’과 ‘지식’이란 낱말의 용법은 일상적인 맥락에서의 용법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의 본격적인 서막으로 나폴레옹이(국가권력) 학자(지식 생산자)들을 데리고 이집트에 원정을 간 이야기를 든다. 게다가 논의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서문에 밝힌 연구방향도 푸코의 고고학이나 계보학의 방법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족이지만 맑스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 대해서 잠깐 문제삼고 싶다. 맑스가 식민지 인도에서 영국에 착취당하면서 한편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것을 보고 “영국은 이 혁명을 초래함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역사의 도구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5)고 평하고 이어 괴테의 시를 인용한 것으로, 저자는 맑스가 “낭만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맑스가 말한 “역사의 도구”라는 것은 동양을 우월한 서양문명에 종속시키는 낭만적 사업을 말하는 것 이라기 보다는, 전근대적 경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장차 공산 혁명을 촉발할 토대를 마련하는 단계를 영국이 수행해 준 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어서 오리엔탈리스트는 “인간을 광범위한 집합의 견지에서 파악하고 또 추상적인 일반개념으로서 인식했다”고 비판하고 맑스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맑스가 인간 개체보다는 계급을 단위로 사고한 것은 사실이나,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른 입장에서 접근한 구분으로, 저자의 맑스 이해가 부적절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다루는 ‘오리엔트’는 주로 근동 지방에 한정되어 있고, 그에 대립되는 서양도 프랑스와 영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총, 균, 쇠>가 대립시켜서 검토하는 대상은 유럽과 유럽 아닌 대륙 전체에 걸쳐 있어서 논의 대상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두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비교하고 보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데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은 언어적인 세계에서의 서양인의 세계관을 다루는 만큼, <총, 균, 쇠>에서 간단하게 다룬 인종주의 적 시각의 좀 더 풍부한 예를 제시한다. 이 예에서 보여지는 주장은 <총, 균, 쇠>에 제시된 것처럼 초보적인 수준의 것들은 아니다.

보는 바와 같이, 셈 인종은 모든 점에서 그 단순성으로 인하여 미완성의 종족이라고 생각된다. 인도-유럽어족에 대한 이 종족의 관계는-감히 유추를 사용한다면-유화에 대한 연필화와 같다. 이 종족은 완벽함의 필수조건인 다양성, 활달함 그리고 생명의 풍요함을 결여하고 있다. 창조력이 결여되어 있어서 은혜로운 소년기를 보낸 뒤에는 오직 가장 평범한 남자가 되는 것과 같이, 셈 인종은 그 최고의 만개를 일찍 경험하기 때문에 그 뒤에는 참된 성숙을 이룩할 수가 없다.6)

푸코의 방법론은 진리의 모습을 한 권력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에는 유효하지만, 단지 밝히기만 할 뿐 변화를 위한 이론적인 전망을 제시하거나 현재 권력의 뒤를 업고 있는 지식을 대체하는 데 실천적인 지침이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좀 더 포지티브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에 오리엔탈리즘이 행사하는 동양에 대한 권력을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반박하는 역할을 <총, 균, 쇠>의 성실한 과학적 방법이 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상으로 <오리엔탈리즘>과 <총, 균, 쇠>에서 다룬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고찰을 살펴보았다.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인이 보는 동양에 관한 지식-권력의 구조를 드러내고 <총, 균, 쇠>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반론하여 인간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긍정하는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실천이다. 오리엔탈리즘과 그 변종인 미국의 이슬람 인식, 러시아의 체첸 민족에 대한 입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가깝게는 우리 나라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오리엔탈리즘’은 어떠한가? 우리는 국가경쟁력과 민족적 단결을 주장하는 한편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틀로서의 우리 사회의 담론은 건강한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참고한 책: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미셸 푸코 <담론의 질서> 새길신서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엘리자베스 클레망 外<철학 사전> 동녘

주----
1) 푸코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정우 해설, <담론의 질서>, 새길신서) 2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푸코 사상에 대한 간략하고도 명확한 소개이다.

2) discurs라는 프랑스어 낱말은 맥락에 따라 담화, 담론, 언설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오리엔탈리즘>에서 쓰인 용법은 대게 지식으로서 체계를 갖춘 언어들이라는 의미에서 언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편의상 푸코의 용어를 번역할 때 포괄적으로 쓰이는 담론이라는 용어로 통일하겠다. (자세한 논의는 이정우 해설 <담론의 질서> 177쪽을 참조)

3) 동녘<철학 사전: 인물들과 개념들>

4) 이것은 현대물리학에서 물체가 에너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 자체가 질량-에너지의 한 양태임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하다.

5) <오리엔탈리즘> 278쪽

6) 르낭, Oeuvres completes <오리엔탈리즘> 271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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