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리나

넌 왜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친구도 없냐?

멀라...사귈 사람이 없으니까 없는거지...
언제 소개팅이라도 시켜줘보고 그런 소리를 하나...-.-

가볍게 즐기고 헤어지는 만남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겠지. 나는 특히, 끝이 보이는 시작이 주저스러운 것이다.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잘 지내던 커플이 깨진 다음, 파편 한 쪼가리가 우글우글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술잔이나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알다가도 모를 것이 연애이고 100인이 100색의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게 연애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은 이렇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워야 하는 반면, 불행은 불만족스러운 것이 몇 가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인것 같다. 행복해지기란 이렇게 쉽지가 않다. 그것도 '함께 행복해지기'일 경우에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어 간다. 판단기준이 유연해졌으니 나쁘지는 않다. 예전엔 믿지 않았던 '단기간에 필이 꽂히는'경험도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건 말로 할 수 있는 것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어설프게나마 추스려 보고싶다. 이것은 내가 꿈꾸는 연인의 이상형이기도 하고, 어느정도는 친구나 선후배의 모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평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들에 적절한 의미를 주어가면서 살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 아닌가? 삶의 큰 목적이며 행복의 기본 조건이다.

자신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미셸 푸코가 유행시킨 말이지만, 그 사람의 용법에 한정시키기 아까울 만큼 멋진 말이다. 거의 외부의 소유물이(그 주인이 개인이든, 사회의 계열망이든) 돼버린 것 같은 사람은 대면하고 나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외부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어느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자기의 주인이 바로 거울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타인도 배려할 수 있다.

계절이 넘어가고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그 때 그 얼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대단한 사건도 없이. 이런 관계가 어떤 이와는 지루하고 어떤 이와는 편안하다. 그 경계를 가르는 '어떤' 것은 무엇일까? 별 것 아닌 작은 요동들이다. 그 요동이 길게 보아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작은 역동성/불확실성이 사람을 늘 매력적으로 만든다.

책도 즐겨읽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나는 좋다.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은 누구인가를 말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가꾸는 것이 아름다움이며, 자기를 배려하는 것이며,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켜가는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나 별로 신통할 것이 없는 선택 앞에서도 오래 망설이는 소심한 경우는 사절이다.

이성 친구인 경우에는, 너무 못생기면 곤란하다. 이건 수컷들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플러스 알파와 마이너스 알파. 완벽한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아까 말했듯 매력이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내키는 대로 나열해본 두루뭉실한 밑그림 정도이다.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고,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내게 매력적일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음...써놓고 보니...
내가 왜 애인이 없는지 알겠다 ^^

내 일이나 잘 해야지 -.-

2002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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