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일본여관

내륙에서 바다로 향하는 기차가 지나간다
후루룩, 황급하게 면발을 집어넣는 고단한 입처럼
터널이 동해남부선을 빨아들인다
밤이 도계(道界)를 넘어간다
잔상으로 남아 있는 시린 차창
기차가 멀어지는 소리가 멀어진다
한바탕 눈이 퍼부울 것 같다
검은 산맥의 능선들이 뒤척인다


국군통합병원 나팔수가 홀로 자정을 밟고 있다
마우스 피스를 입에 대고 무슨 음정을 만든다
휘익, 어둠의 안쪽을 긁고 가는 한줄기 바람의 끝이 녹슨다
산악이 제 높이만큼 파 놓은 계곡보다
이 가을 밤이 훨씬 깊고 길다


돌연, 추락 직적에 생의 빛깔을 되찾은 선명한 나뭇잎들이
깊은 가을 밤의 맨 아래로 착륙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 쪽으로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지구가 한 칸, 자전한다

Monthly Archives

Pages

Powered by Movable Type 5.14-en

About this Entry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March 12, 2002 11:12 AM.

[이문재] 섬의 북쪽 (화살기도5)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봄 생각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Find recent content on the main index or look in the archives to find all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