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두들 전화기를 붙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랑했노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대상이 가족이나 친구들이라면 그런 전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그렇게 잘 해주지도 못했고, 자주 티격태격하긴 했어도 결국에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지만...
연모하던 그사람에게도 전화를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더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 내지는 '이제 와서 어쩌라구'라는 식의 무감각밖에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성급하게 당겨서 엉켜버린 끈. 조급함과 서툰 솜씨는 내 탓이지만 해법은 커녕 어쩌다가 엉키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알게 된 거라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뿐, 타인과 내가 맞닿는 곳에서 나오는 소리 - 소음 내지는 음악 - 에 좀 더 섬세하게 귀기울이고 현명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내일 당장 망하지는 않을 테고,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른 듯하니까. 어린 나도 언젠가 잘 엮어진 멋진 리본을 만들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2001년 7월 20일